[데스크칼럼] “토종기업인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입력 2018-08-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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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영 부국장 겸 산업2부장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아빠에게 숙제를 도와 달라고 했다. 아빠는 검색해서 찾아보자고 했다. 딸이 연 플랫폼은 초록색 검색창이 아니었다. 유튜브를 열고 ‘독도’라고 치더니 동영상을 보고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은 “문자 세대인 아빠의 검색창과 영상 세대인 자녀들의 검색창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며 나와 함께 뜬금없이 네이버의 미래를 걱정하다 헤어졌다.

1020 세대가 글이나 그림이 아닌 동영상으로 검색한다는 사실은 초·중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라면 다 안다. 젊은 세대들이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동영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직업 선호 1위가 크리에이터(또는 유튜버)로 꼽혔다는 한 조사 결과도 요즘 젊은 세대들의 유튜브 선호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중장년층은 알지도 못하는 게임 1인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뷰티 크리에이터 ‘씬님’, 먹방 크리에이터 ‘밴쯔’ 등이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연 수입이 10억~17억 원이라고 밝혔으니 연예인을 선호하던 초등학생들이 크리에이터를 선호 직업으로 갈아탄 것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유튜브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사용되는 앱으로 우뚝 섰다. 앱 분석회사 와이즈앱에 따르면 6월 기준 유튜브 사용 시간은 289억 분으로 카카오톡(189억 분), 네이버(130억 분)를 멀찌감치 제쳤다. 불과 2년 전인 2016년만 해도 79억 분에 그쳤던 유튜브는 지난해 역전해 정상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유튜브를 비롯한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들의 급부상에 네이버를 필두로 한 국내 IT업계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튜브가 엄청난 콘텐츠를 쏟아내면서 다양한 타깃층을 겨냥하는 ‘콘텐츠 공룡’인 동시에, 지인의 딸처럼 ‘동영상 검색 포털’로까지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국내 시장에서 이처럼 급성장한 배경에는 ‘콘텐츠 개발과 강화’라는 자체 노력이 물론 컸지만 우리 정부의 허술한 규제,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한몫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거슬러 올라가면 국내 IT기업들은 2007년 시행된 인터넷 실명제를 시작으로 2009년 저작권법 삼진아웃제(불법 복제물 전송자에 세 번 경고 후 중징계), ‘미네르바 사태’로 인한 인터넷 검열 등의 적용을 받으면서 발목을 잡혔다. 반면 유튜브는 규제로 인해 국내 사이트를 이탈하는 가입자를 흡수, 세력을 키워 나갔다. 뿐만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아프리카TV 등이 연간 수십억~수백억 원씩 내는 망 사용료(콘텐츠 공급업자가 통신사 등에 통신망 사용 대가를 지급하는 비용)도 구글을 비롯해 유튜브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0원도 내지 않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규제 사각지대에서 마음껏 활개를 치며 시장을 확대하는 사이 국내 기업들은 각종 규제에 발목을 잡히며 불합리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이 아닌 토종 기업이어서 오히려 역차별을 받거나 시장에서 설 자리가 좁아지는 사례는 비단 IT업계뿐만이 아니다. 맥주, 베이커리, 유통 등 국내 소비재업계도 수입 제품이나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역차별받고 있다며 외국 기업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게 해 달라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국내 시장은 신기술에 근거한 신산업의 등장으로 종전 산업 질서가 재편되면서 신-구 산업 간 갈등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은 전 세계 기업들이 구글이나 아마존처럼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을 우려하며 국경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변화와 혁신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부가 풀 건 풀어주고, 조일 건 조여주는 적절한 역할을 하는 것이 기업들엔 그만큼 중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성(이른바 갑을관계)에 주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적이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불공정한 부분이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 균형 잡힌 정책을 펴 주길 기업들은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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