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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세계가 주목하는 분청(粉靑)의 美

우리 도자문화의 뿌리는 말할 것도 없이 원시시대의 토기다. 토기의 제작과 사용은 3세기 무렵 물레의 도입으로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는 가야와 삼국시대 중엽에 보편화되었고, 그 창작정신과 조형성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로 계승·발전되었다는 것이 우리 도자사(陶瓷史)의 큰 흐름이다.

문화는 자생적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외부로부터의 영향이나 선진 문물을 주체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융성하기도 한다. 우리 도자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토기는 자생에 가깝고, 청자와 백자는 중국의 도자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발전시킨 사례다. 그런 찬란한 도자문화가 있어 누구나 다 아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그 사이에 독특한 아름다움을 오롯이 품은 분청(粉靑)사기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도자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겐 낯설지 않은 ‘분청사기’, 줄여서 ‘분청’.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가 그 독창적인 조형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우리 도자 문화유산의 특별한 존재!

분청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그처럼 화려하건만, 부끄럽게도 후손들은 그런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는커녕 제대로 된 이름조차 붙이질 못했다. 더욱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조상 분묘의 도굴 현장에서 분청사기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은 데다, 보존되어 전하는 전세품(傳世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분청사기가 이웃 일본에서는 찻잔(다완)으로 전해져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다도(茶道)를 일으켰고, 저들은 분청사기의 제작 기법, 문양 또는 도요지에 따라 미시마(三島), 하케메(刷毛目), 고히키(粉引), 가다테(堅手), 긴카이(金海) 등으로 구별하여 불렀다. 그리고 이도(井戶)다완과 같은 특별한 명품에는 고유 이름을 붙이는 등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고, 중요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해 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조선의 선각자 고유섭(1905∼1944)은 일본인들이 붙인 뜻도, 어원도 분명치 않은 그런 이름들을 버리고 새롭게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라고 이름 지었다. 우리가 줄여서 편하게 부르는 분청사기, 분청의 원이름이다. 지금에 와서는 국내외 학계는 물론 도예 애호가들 사이에 널리 쓰이는 공인 용어가 되었으니,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수집가들 사이에서 분청의 인기는 지속적으로 높아져 왔다. 내가 고미술에 입문한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가격 면에서 가장 많이 상승한 분야 몇을 꼽으라면 분청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 물건은 단연 분청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다. 2011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린 ‘분청사기 특별전’은 그러한 관심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전시였다. 메트로폴리탄의 특별전은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57점의 분청사기와 분청의 예술사적 전통과 맥을 같이하는 8점의 현대미술(윤광조의 도예작품, 이우환의 회화 등)로 꾸며진 것이었다. 박물관 측은 이 특별전을 열게 된 배경에 대해 2009년에 자신들이 개최한 ‘한국미술의 르네상스, 1400∼1600’을 통해 그 시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분청사기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새삼 주목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해외 경매에서도 분청은 꾸준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금껏 해외 경매에서 한국 도자기에 대한 관심은 주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재적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분청에 주목할 것으로 본다면 섣부른 기대일까? 아무튼 그런 나의 예측이 맞았는지, 4월 18일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분청 편병(扁甁)이 313만 달러에 낙찰되어 경매사상 분청으로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김치호 고미술 평론가·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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