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⑦ 이상적인 만년필 크기는

입력 2018-01-05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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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선 백조를 잡거나 죽이면 동물보호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고 여왕반역죄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12세기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소유권의 표시가 없는 백조는 모두 영국왕의 소유라는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왜 이런 법률이 정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백조가 맛이 좋아 연회에 자주 오르자 보호하기 위해 법을 제정했다는 것이다. 여왕과 백조, 겉으로 보면 우아한 조합이지만 실제 속은 그렇지 못한 것이었다. 필기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제정된 연유가 썩 내키는 것은 아니다.

백조의 크고 아름다운 깃털은 깃펜의 최상의 재료이기도 하다. 깃펜은 동양의 붓에 비하면 역사가 짧지만, 서양에선 가장 오래 사용된 필기구이다. 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약 1500년간 사용되었다. 서양 역시 필기는 오른손으로 하였기 때문에 잡았을 때 바깥쪽으로 휘는 왼쪽 날개의 것이 선호되었다.

영어로 백조는 스완(swan)이지만 암컷 백조는 따로 펜(pen)이라고 부른다. 암컷의 깃털이 길고 굵어 깃펜으로 만들어 쓰기 좋기 때문이다. 깃펜의 길이는 보통 16~18cm인데 긴 백조의 깃털은 이 길이로 만들기 충분했다. 또 손으로 잡기 편할 만큼 굵고 한 번의 디핑(dipping·잉크를 찍는 것)에도 조금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길이가 다음에 등장하는 필기구인 연필과 만년필에도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다. 연필의 길이는 보통 17~18cm이고 몽블랑 만년필 중 최상위 라인인 149는 뚜껑을 꽂으면 166mm, 펠리칸의 명작 M800은 164mm이다.

▲1907년의 스완 만년필 광고.
▲1907년의 스완 만년필 광고.

만년필은 아니지만 최근에 나온 글을 쓰는 애플사(社) 애플 펜슬은 17.5cm이다. 약 17cm가 필기구의 이상적인 길이일까? 사실 17cm 이상은 끝이 무뎌지면 깎아 써야 하는 깃펜과 연필의 적정한 길이이다. 우리보다 손이 큰 서구에서도 17cm가 좀 안 되는 몽블랑149와 펠리칸 M800은 오버사이즈라고 부른다. 연필도 몇 번 깎아야 쓰기 편한 길이가 나온다. 16~17cm는 길다.

16~17cm가 길면 16cm 미만은 어떨까? 1970년대 후반 일본의 한 만년필 회사는 만년필에 조예가 깊은 작가의 제안을 받아들여 만년필을 제작하게 된다. 그 작가의 제안은 이러했다. 주름 있는 몸통, 펜촉은 22mm 전후, 펜의 길이는 16cm 미만. 이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회사는 15.9cm의 만년필을 만들었다.

이 만년필은 지금도 나올 만큼 성공했지만 15.9cm는 과감하지 못했다. 망설이지 말고 더 줄였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회사도 15.9cm가 길게 느껴졌는지 최근에 내놓아 성공한 신작은 5mm 짧아진 15.4cm다.

마지막으로 예를 들면 모두가 인정하는 실용의 명작 파커51의 길이는 15cm이다. 이게 이상적인 길이일까? 중요한 기준은 될 수 있어도 꼭 맞는 답은 아니다. 최근에 알려진 진실인 파르테논 신전,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 앵무조개 그 어디에도 황금비가 없는 것처럼 15cm는 저마다 손 크기가 다른 사람들의 이상적인 길이로 확정할 수 없다.

결국 이상적인 길이는 그 사람의 손이 결정하는 것이다. 값이 비싸지 않고 오래되고 볼품없어도 잡기에 편하고 글이 잘 써진다면 그 만년필이 궁극의 만년필이고 그 길이가 이상적인 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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