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퇴직의 계절, 직장인 월동준비

입력 2017-12-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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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하략).//”

선배가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시를 동봉해 퇴직을 알리는 편지를 전해왔다. 담담한 시 인용과 함께 보낸 간단한 신상 소식이었지만 퇴직에 대한 아쉬움을 읽을 수 있었다.

며칠 전, 그분의 야심찬 신년 사업 계획 포부를 들은 터라 가슴이 알알하게 아팠다. 언론에 인사 동정 소식이 빈번하다. 새 의자를 차지한 희소식은 그만큼 물러난 의자 주인이 있다는 것과 동의어다. 인생살이가 그렇지만, 늘 희소식의 헹가래 소리는 시끌벅적하다. 그만큼 존재할, 아니 그보다 더 클 그늘진 이들의 소식에 대한 관심은 고적하다. 영전의 축배는 드높지만, 퇴직의 고배(苦杯)는 잠잠하다.

바야흐로 제5의 계절, 인사철이다. 수능 추위 못지않게 매서운 게 인사 추위다. 엄동설한 겨울 바람보다 더 춥고, 매섭게 옷깃을 파고든다. 조직생활에서 한직(閑職) 발령은 억울하고 고깝다. 그래도 ‘라스트 맨 스탠딩’,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이 강하다’를 새기면 그뿐이다. 반전의 그날을 기다리며 견디면 된다. 퇴직은 다르다. 용도 폐기의 퇴물 선언 같아 서럽다. 낭떠러지에서 등 떠밀리는 것 같아 두렵다. 남들은 “그만하면 오래 했다”고 말하지만 본인은 ‘청춘을 바쳤다’고 생각한다.

많은 직장인들은 지금의 조직생활을 천년만년(千年萬年) 계속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다 황망하게, 허망하게 뒤통수 맞듯 퇴직을 맞는다. 아니 당한다. ‘사람은 다 죽기 마련이지만 나는 예외’라는 것과 ‘직장인은 다 퇴직하지만, 나는 열외’라고 착각하는 것은 보편적 망상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현직에서의 조직 브랜드를 자신의 브랜드로 착각한다. 직장생활의 녹(祿)을 오래 받을수록, 생각에도 교만의 녹과 몽상의 때가 덕지덕지 낀다.

제5의 계절, 퇴직철을 맞는 월동 준비의 요체는 ‘마음 내려놓기’와 ‘나 직면하기’다. 첫째, 인심의 염량(炎凉) 세태에 섭섭해하지 말라. 감탄고토(甘呑苦吐)가 아니라 시장의 당연한 법칙일 뿐이다.

‘사기’의 ‘맹상군열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3000명의 식객을 먹여 살린 제나라의 맹상군이 자신의 권세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를 표하자, 그의 식객 풍훤은 이렇게 간(諫)한다. “무릇 일에는 이치가 있습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따르는 사람이 많고, 가난하고 천하면 따르는 이가 적은 것 또한 세상사의 이치입니다. 물건이 많은 아침 시장이, 이미 팔리고 없는 저녁 시장보다 사람이 더 붐비는 이치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동안 주변에 사람이 모였던 것은 당신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역할(이익) 때문이었다. 아침 시장에 사람이 붐비는 것처럼…. 그것을 본인의 가치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일 뿐이다. 이제 저녁시장이 되어 좌판에 물건이 없으니 사람이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 XXX도 당신이 다 키운 사람들이라고? 천만에. 그들이 도와서 당신이 이만큼이라도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고 사리에도 맞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라.

둘째, ‘내가 누군데’의 느낌표를 물음표로 바꿔라. 퇴직 후 섭섭한 마음에 말끝마다 “내가 누군데”를 들먹이지 말라.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은 상대방이 아니라 본인 자신이다.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참나무(The Oak)’에서 겨울은 직장인의 퇴직, 제5의 계절에 대비(對比)해볼 수 있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이후에도 우뚝 서 살아가게 하는 힘이 참나무의 벌거벗은 힘, 나력(裸力· naked strength)이다. 조직의 외투와 방패를 벗고 남은 나의 맨몸은 어떤 모습인가. 세상에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게 나라고 하지 않는가. 조직의 가격표를 떼고 난 뒤 내 본연의 가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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