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눈] 이진숙 해냄출판사 편집장이 말하는… 조정래 ‘풀꽃도 꽃이다’

입력 2016-09-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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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현실의 벽… 절박한 호소

▲조정래 작가와 신작 ‘풀꽃도 꽃이다’.  사진제공 해냄출판사
▲조정래 작가와 신작 ‘풀꽃도 꽃이다’. 사진제공 해냄출판사

‘풀꽃도 꽃이다’가 쓰여진 원본 원고지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 조정래 작가의 새 장편소설이 드디어 완성되고 있구나 실감했다. 이미 3년 전 ‘정글만리’라는 단행본 3권 분량(원고지 3615매)의 장편소설 편집 작업을 경험해 본 터라 새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매우 컸고, 이번 소설이 다름 아닌 우리 교육의 문제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몹시 궁금했다.

원본 원고는 디지털 보관을 위해 스캐닝해 저장했고, 이미지 파일을 프린트해 원본과 대조하고 입력한 후 활자로 바꾸었다. 이후 다시 원고지 사본과 대조하면서 한 글자라도 빠진 게 없는지 확인했다. 수십 년을 거친 작가의 고뇌와 집필 작업이 오롯이 책 속에 담기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원고지 상태로 처음 읽고, 한글 파일 상태로 의문점이나 교정 시 주의할 점을 정리하고, 디자인을 마친 교정지 상태로 다시 읽으며 그 마음은 점점 커졌다.

작가가 펜으로 꼼꼼히 써내려간 원고지 속에 등장한 인물들은 현재를 살아가며 느끼는 온갖 갈등과 고민이 응축된 캐릭터들이었다. 밤낮없이 회사 일에 시달려 ‘저녁이 있는 삶’이란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버지들의 피로와, 자의 반 타의 반 이루어지는 남편의 무관심 속에서 자녀 교육을 도맡다시피 한 어머니들의 분투는 우리 이웃이나 친구의 모습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정치·사회적인 변화가 없다면 결코 해결하기 어려운 거대한 문제에 휩싸인 개인들을 하나하나 펼쳐 보였다. 어른에서 아이까지 다종다양한 인물들은 작가의 대표작인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분단과 전쟁, ‘아리랑’의 일제강점기, ‘한강’의 급속한 경제개발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운명 공동체로서 시대적 고통을 경험하고 있었다.

암기 위주의 학습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지쳐가거나 대학 서열화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아이들을 마치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동유, 대장장이로 살아보고 싶은 윤섭,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는 예슬 등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들이 대학이라는 관문 앞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현실이 담겨 있었다. ‘아빠의 무관심과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이 아이의 대학을 결정한다’는 말처럼, 아이를 자신과 동일시해 교육에 뛰어들지 않으면 마치 무능력한 부모가 되는 듯한 시대적 이데올로기도 담아냈다. 개인의 노력에만 기대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버린 교육의 현실에 작가는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진다. 진정 이대로 괜찮겠냐고.

작가는 아들의 입대를 바라보며 분단 상황이 극복되지 못한 것을 한탄했듯이 아들의 중고생 때보다 더 심해진 손자 시대의 교육 문제가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장편소설 ‘허수아비춤’을 통해 경제민주화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파한 것, ‘정글만리’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세계의 변화를 꿰뚫어봐야 한다는 것과 문제의식은 일맥상통한다.

‘풀꽃도 꽃이다’가 출간된 지 2개월, 처음 원고를 읽을 때나 다시 본 지금이나 교육 문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도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에 휩싸일 수도 있겠다는 간절함과 비장함이 두루 섞인 기분은 여전하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100년의 교육 계획을 세우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함은 작품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 숨쉰다.

얼마 전 작가는 한 강연회에서 “작품을 집필할 때는 매일 밤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심정으로 잠들었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작품을 완성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절박한 마음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문제도 역시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이 거대한 현실에 작가가 내놓은 ‘풀꽃도 꽃이다’라는 소설이 더 많은 이들에게 깊이 울림을 선사하기를, 그리하여 시대를 바꾸는 큰 힘이 되기를 독자이자 편집자로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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