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적 분석 통해 실태 파악
시민교육·효과적 정책 마련해야

요즘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분열과 불신이다. 디지털화와 세계화, 문화 다양성 확대, 그리고 개인화가 가속되며 한국사회는 다원화되고 있다. 동시에 기후위기, 불평등, 민주주의의 위기, 지역 격차 같은 복합적 사회 문제들이 중첩되면서 사회는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학계에서 ‘파편사회’라는 이름으로 개념화되었고, 실제로도 공동체의 연대는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일상화된 차별과 혐오,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배제다. 특히 정치적 양극화가 깊어지면서 한국인의 집단 간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특정 집단을 향한 언어적 공격과 혐오 표현은 이제 낯설지 않다. ‘다름’은 존중이 아니라 배제의 근거가 되고, 신뢰와 연대 대신 냉소와 경멸이 사람들 사이를 메운다.
최근 10년간 한국 정치는 연이어 충격적인 사건들로 요동쳤고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정치 세력은 차별과 혐오를 정치 동원의 도구로 삼았다. 페미니즘은 ‘역차별’로 규정되었고, 이주민과 난민은 ‘범죄자’로, 장애인은 ‘정상 사회’의 외부자로 몰렸다.
이러한 정치적 혐오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었다.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혐오 발언이 콘텐츠로 소비되었고, 미디어는 이를 묵인하거나 오히려 증폭시켰다. 결국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빈곤층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일상적으로 공격받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혐오와 배제가 일상이 된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바로 이 순간, 우리에게는 사회를 다시 연결하고 회복시키기 위한 포용의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혐오와 배제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혐오 관련 연구는 주로 담론 분석에 머물렀고,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부족했다. 다양한 계층, 지역, 성별, 연령 등을 아우르는, 폭넓고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혐오가 어떻게 작동하고 교차하는지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아울러, 사회적 포용을 단순한 선언에 머물지 않고, 실행가능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육, 노동, 주거, 복지, 디지털 접근 등 시민의 삶 전반에 포용적 원칙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의 새로운 배제―디지털 격차, 알고리즘에 의한 차별 등―에 대한 대응도 시급하다.
포용은 다층적이어야 한다. 개인 수준에서는 혐오를 반성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집단이 만나 협력할 수 있는 ‘포용적 거버넌스’가 요구된다. 국가 수준에서는 시티즌십 평등을 위한 포괄적 정책 패키지가 필수적이며, 국제적으로는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포용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시민’으로 인식하는 시각의 전환이다. 포용은 시혜나 동정이 아니라, 공동체의 평등한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원칙이며, 우리가 새롭게 맺어야 할 사회계약이다. 포용은 ‘누구를 포함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혐오와 배제의 구조는 뿌리 깊고 복잡하다. 그러나 변화의 시작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 말하는 방식, 듣는 방식이 바뀌면, 사회도 바뀔 수 있다.
포용사회는 이상향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당장 실현해야 할 현실적 과제이며,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최소한의 사회적 유산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혐오와 배제를 넘어서, 포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누구도 외면당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