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은 “K-장인 손길 필수…근본 해법 내놔야”

국내 조선업계가 고질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 다각도의 해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어느 것도 ‘결정적’ 해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재도급, 외국인 노동력 투입, 스마트 조선소 전환 등이 속속 추진되고 있지만 산업의 근간인 숙련공 부재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실정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당장의 인력 공백을 메우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땜질식 처방’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조선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소들은 고질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 다각도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해외 조선소에 외주를 맡기거나, 국내 조선업 현장에 외국인 인력을 끌어오는 식이다.
일손이 부족한 국내 조선소는 주로 선박 블록 제작을 중국 현지 업체에 외주로 맡긴 뒤, 이를 국내로 들여와 최종 조립하는 방식으로 생산 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자재와 인건비 측면의 비용 절감 효과는 물론 국내 인력난을 완화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중공업은 팍스오션과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고 선박 건조에 필요한 도크와 인력을 제공받는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1월에도 수에즈막스급 탱커선(원유운반선) 네 척 건조를 팍스오션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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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선박의 품질 저하 리스크다. 재도급으로 단기적인 인력 부족 현상은 메울 수 있지만 중국 업체의 건조 기술력은 숙련된 국내 인력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커 사실상 선박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 조선소 도크에는 국내 기술을 어깨너머로 익힌 인력이 대부분이라 완성된 선박에서 설계도와 다른 부분이 자주 발견된다”며 “중국 도크에서 제작한 선박은 국내에서 만든 것과 비교해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작업 체계 역시 큰 격차를 보인다”고 했다.
해외 재도급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외국인 기능직 인력을 국내로 끌어오는 방식도 늘었다. 2년 전부터 정부가 추진한 숙련기능인력(E-7) 비자 쿼터 상향에 힘입어 인력 부족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산업통산자원부에 따르면 2023년 1~3분기 기준 국내 조선업 신규 생산 인력의 86%가 외국인 노동자였다. 하지만 기술 숙련도, 언어·안전 커뮤니케이션 등의 장벽으로 숙련공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일부 대형 조선사는 인공지능(AI) 기술과 로봇 자동화를 활용한 ‘스마트 조선소’를 구축해 생산성을 높였다. HD현대 조선 3사(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HD현대미포)는 미국 AI 방산기업 팔란티어와 협력해 2030년까지 미래 첨단 조선소를 구축할 계획이다. 한화오션은 거제사업장을 스마트 조선소로 전환하는 중으로 생산 현장 자동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AI와 로봇으로도 ‘장인의 손’은 대체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곡선 용접, 초정밀 도장, 복합 배관 등 고부가 공정은 여전히 사람 손이 필요한 작업이다. 자동화가 오히려 기술 전승 단절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자동화 기술 확산이 숙련공의 기술 전승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장 전문 인력의 평균 연령은 40대 중반 정도로, 대다수 퇴직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장인이 만든 제품이 견고하듯 선박도 장인의 영역이 있는데, 숙련공은 사라지고 로봇만 남게 되면 고부가 선박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열악한 건조 현장의 환경와 고용 조건을 개선해 청년 인력을 끌어올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