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한한령은 없다”라는 거짓말

입력 2025-05-1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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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한국영화학회장

한류 확산에 중국 감수성 ‘화들짝’
통제에도 문화콘텐츠 수출은 늘어
차단 완화 움직임 속 기대는 일러

중국 당국은 언제나 “한한령은 없다”고 말한다. 공식적인 법령이나 문건으로 금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를 해제하라는 한국의 요구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러나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흔들리는 나뭇잎이 증명하듯, 2016년 이후 한류가 중국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을 보면 한한령은 명백히 존재한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한국 출판, 영화, TV 드라마 등 목소리가 분명한 ‘떠들썩한 콘텐츠’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계기로 한한령이 촉발됐지만, 이면에는 중국의 이데올로기 통제 전략이 숨어 있다. 한류의 확산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감수성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자, 이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검열 강화, 편성 제한, 게임 판호 발급 중단 등 일련의 조치는 구체적 증거로 남아 있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서 한류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았다. 불법 스트리밍, 팬 커뮤니티의 우회 접속, 위챗을 통한 소규모 유통 등은 한류가 여전히 중국 대중에게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튜브에는 중국어 자막으로 번역된 한국 예능, 드라마, 뮤직비디오가 꾸준히 업로드되어,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차단은 물리적 경계일 뿐, 중국 대중의 수요를 막지는 못했다.

한한령의 목적은 복합적이다. 첫째, 예의 이데올로기 통제를 위해 해외 문화콘텐츠의 유입을 막겠다는 전략이었다. 둘째, 사드 배치 당시 한국 대중과 정부를 분리하려는 전략이었다. 중국은 한류를 차단함으로써 한국 정부에 대한 국내의 반감을 유도하려고 했다. 셋째, 자국 콘텐츠 산업의 성장을 확보하려는 일종의 ‘보호무역’ 전략이었다.

그러나 한한령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한류는 위기 속에서 새로운 지도를 그렸다. 중국 진출이 막히자, 한류는 유럽과 미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그렇다고 대(對)중국 수출이 줄지도 않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통계에 따르면 한류 콘텐츠의 중화권 수출액은 2016년 18억 달러에서 2022년 46억 달러로 증가했다. 출판, 영화, TV 드라마 등 ‘떠들썩한 콘텐츠’만 다소 수출이 줄었을 뿐이다.

그뿐 아니라 한한령으로 인해 한국 대중의 반중 정서는 더욱 깊어졌고, 양국 간 문화적 거리는 더 멀어졌다. 특정 국가의 문화콘텐츠를 전면 금지하는 방식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한국도 1998년까지 일본 대중문화의 국내 유입을 막았지만, 김대중 정부 이후 개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는 오히려 한류 산업의 자생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한한령이 점차 완화되리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아이돌 그룹의 현지 콘서트, 한국 감독 영화의 중국 개봉 등 몇 가지 사례를 둔 희망 섞인 전망이다. 이런 움직임에는 몇 가지 정치·외교적 배경이 있다. 첫째, 올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을 맞아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위한 유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둘째, 미국과 중국 사이 관세 전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국을 전략적 우호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셋째, 중국 콘텐츠 산업 내에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에 부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섣부른 희망은 금물이다. 중국은 문화콘텐츠를 산업의 영역을 넘어서 이데올로기 기준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산업의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국의 이데올로기와 부합하지 않는다면 한류에 문을 열어줄 일은 없다. “한한령은 없다”는 말은 외교적 수사일 뿐이다. 지난 8년간 우리는 그 효과를 생생히 경험해 왔다. 그러나 한류는 차단될수록 더 멀리 뻗어나갔다. 물처럼 흐르는 문화는 막을 수 없고, 대중의 감정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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