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법률 제정 5건 역대 최소
충신은 요직에, 나머진 퇴출
최근 관세 문제로 지지율 변화 감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해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29일(현지시간) 자로 100일을 맞는다. 불과 100일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정치와 경제, 사회를 뒤흔들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에 집중한 나머지 전통적인 동맹국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긴장 관계를 심화하고 자국에서도 과도한 정책으로 비난을 받는 등 미국 안팎에서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100일 동안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행정명령이다. 미국 연방정부 관보에 따르면 지금껏 서명한 것만 약 130건이다. 비교 가능한 집계를 시작한 1953년(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이후로 최다 기록이다. 직전 최다였던 조 바이든 전 정권의 40건을 3배나 뛰어넘는다.
반면 이 기간 의회를 통과해 법률로 제정된 건수는 역대 가장 적었다. 대통령 서명까지 마친 법률은 5건에 불과하다. 1953년 이후 최소 수치로, 심지어 트럼프 1기 당시의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성적이다.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데도 정책 결정 권한이 백악관에 집중되고 있는 구조가 뚜렷하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에 의존하는 대신 연방정부 권한에 집중했다. 그간 자신을 지지해온 충신들을 장관 등 요직에 앉혔다. 별을 달아보지도 못한 측근 피트 헤그세스 예비역 대령이 국방장관에 지명됐을 당시 행정부 안팎에서 ‘대체 그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이 쏟아진 건 유명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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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인물은 가차 없이 내쫓았다. 극우 활동가인 로라 루머가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에서 “몇몇 안보 담당 백악관 직원들이 충성스럽지 않다고 보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루머의 영향력을 일축했지만, 실제로 국가안보회의(NSC) 고위급 관계자 여럿이 해임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행정부를 장악하고 권한을 극대화한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관세 폭탄으로 세계를 흔들어놨다. 4월 2일을 ‘해방의 날’로 선언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로의 복귀를 천명한 그는 동맹과 비동맹 할 것 없이 관세 때리기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관세율 수치를 틀리는가 하면 시행 여부를 반복적으로 뒤집으면서 전 세계의 불만을 일으켰다.
그 밖에도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관련 국가들을 흔들어 댔고 ‘멕시코만’ 명칭을 ‘미국만’으로 바꿨다. 또 파리기후협정과 세계보건기구(WHO)를 탈퇴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분담금 지급을 중단하는 등 ‘미국은 나라 밖 일에 돈을 낼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미국에선 “국가 재건”이라는 지지와 “헌정 파괴”라는 반발이 첨예하게 충돌했다. 공화당에선 중도파의 이탈이 있었고 민주당에선 사법 방패로 정부를 막아내겠다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나올 수 있던 배경에는 1기 행정부 때보다 높아진 지지율이 있다. 미국 리얼클리어폴리틱스 집계에 따르면 1기 시절 지지율은 취임 후 두 달 반 만에 40%를 밑돌았지만, 2기 들어선 46%대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증시가 폭락하고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최근 들어 변화도 감지된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등이 13~15일 미국인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관세가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응답률은 38%에 그쳤지만, ‘관세는 경제와 소비자에게 해롭고 장기적으로 이익이 없다’는 응답률은 48%에 달했다.
이달 CNBC방송 설문조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가 55%로 긍정 평가 43%를 웃돌았다. 경제 분야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을 앞지른 것은 1~2기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