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독칼’이 된 사법부

입력 2025-04-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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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독을 바르고 대결 무대에 오르는 무인의 등장은 무림 만화의 전형적인 클리셰다. 또한 대체로 그러한 무인들은 만화 속에서 멸칭(경멸하는 호칭)을 달고 살기 마련이다. 오롯이 자신만의 실력을 증명하는 대결에서 독과 같은 외적 수단으로 승리를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승리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명예로워야 할 대결의 격을 떨어뜨릴 뿐이다.

정치권은 조기 대선을 앞두고 사법부를 무기로 선택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법원 선고를 남겨뒀다. 정치권은 진영 논리에 따라 사법부를 언급하며 전직 대통령과 유력 대권 후보의 재판을 지지세력 결집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법부 결정에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책임을 묻겠다는 행태는 삼권분립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도를 넘은 사법부 압박은 판사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최근 만난 한 고법 판사에게서도 이런 고충이 느껴졌다. 그는 ‘유명 정치인의 사건이 자신에게 떨어지면 심정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왜 이런 사건이 내게 배당됐나’ 하고 걱정이 앞설 것”이라고 답했다. 정치적 사건에 쏟아지는 관심과 그로 인한 정치권 압박이 부담스러울 거라는 의미다.

사법부가 정쟁의 희생양이 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헌법적 가치도 ‘내 편이 잘못되면 판사 탓’이라는 억지 주장을 이기지 못했다.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정작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사법부 독립성이 각자 유불리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달라진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러한 현상이 시민 사회까지 확산한다는 사실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판결의 내용보다 ‘어느 쪽에 유리한가’만 따지는 여론이 형성된다. 법리적 접근은 사라지고 정치적 해석만 난무하는 것이다.

정치권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사법부를 수단으로 휘두르지만, 그 대가는 사회 전체가 치른다. 선거가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나든 법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통하는 사법부가 불신의 늪에 빠지기 때문이다.

무림 만화에서는 독에 칼을 바르고 대결한 무인이 멸칭의 대상이 되지만, 현실에서는 정치권의 수단으로 악용된 사법부가 악역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치와 사법의 경계를 존중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전직 대통령과 유력 대권 주자가 동시에 형사재판을 받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대선이 시작됐다. 정치권은 사법부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선거를 지켜보는 대중 또한 판결에 존중하는 태도를 갖춰야만 사법부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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