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약 위기(opioid crisis)와 의료용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단상

입력 2025-04-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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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얼마전부터 마약성 진통제에 처방에 대한 규제와 감시가 부쩍 늘었다. 모 정부부처에서 대학병원 교수들에게 마약성 진통제 처방에 대한 사유를 소명하라고 한다. 대부분 과다처방으로 보이는 환자들에 대해서다. 아마도 이유는 미국발 마약 위기(opioid crisis)일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마약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많이 발생하였다. 마약 과용으로 인한 사망이 늘어나면서, 해마다 증가하던 미국 인구가 줄어드는 일이 있었다. 또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에서는 흡사 좀비처럼,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엉거주춤 하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수입되는 펜타닐 알약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회 고발 프로그램에서는 텔레그램으로 국내에 마약을 유통시키는 동남아 마약 유통 점조직을 보도하기도 했고, 동남아시아 모 국가에서 대규모 마약유통의 큰 손들이 있다고 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 사회에 마약이 너무 흔해졌다. 예전에는 마약뉴스가 나오면 일부 연예인, 해외유학생 등에서 은밀하게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내게 생소한 가수(래퍼)가 개인 방송채널(유튜브 등)에서 마약에 중독이 되었었다며 고백하는 영상이나, 일반인들이 마약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인생이 망가졌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직접 확인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이긴 하지만 아는 지인에 의하면 아침 출근길에 클럽들이 많은 지역을 지나다보면 좀비처럼 어기적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예전이면 술취한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요즘에는 마약에 취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한다. 또한 그 근방의 클럽에 가면 무지개 사탕이란 것을 준다는 소문도 들었다고 한다.

필자는 십수년 전부터 통증 진료를 하고, 세상에서 유일한 허가된 마약인 ‘의료용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해 왔다. 그래서 마약성 진통제라는 약물이 양날의 검처럼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독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환자들에게 ‘마약성 진통제 사용에 대한 설명문 및 서약서’를 받고 있다. 이 설명문 및 서약서의 내용을 간추리자면, 마약성 진통제의 처방과 조절은 전적으로 처방하는 주치의에게 달려있으며 여기저기 병원이나, 의사들에게 바꿔가면서 처방받으면 안된다는 내용이다. 또한 처방받은 마약성 진통제를 양도나 판매하면 형사처벌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씌여져 있다. 다행히도 필자에게 처방받는 환자들은 모두 설명문 및 서약서에 6개월에 한 번씩 자필 서명을 하고, 약을 변경하거나 용량을 조절할 때 잘 이해하고 따라주고 있다.

문제는 용량이 많이 늘어난 환자들에서 생긴다. 대표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많이 사용하는 환자들은 말기 암환자 들이다. 암환자도 초기나 병기가 낮으면 마약성 진통제를 무조건 쓰지는 않는다. 30-40년전 이야기이긴 한데, 필자의 일가친척 중에는 젊은 나이에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해줄 것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나서는 집에 가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분이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결국 집 마당에 있는 나무를 이용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있었다. 예전에는 암환자들도 마약성 진통제 사용 용량을 제한을 했었고, 통증 조절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 이야기다.

필자가 근무하는 아주대병원은 경기 남부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상급종합병원으로서, 온갖 중증 통증환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여러가지 난치성 통증질환이 있지만, 그중에서 단일 질환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CRPS)’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이 있다. 이 질환은 통증점수가 10점 만점이면 10점에 근접한, 즉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통증을 동반하는 질환이다. 아기 낳을 때 느끼는 산통이나, 통증이 심하다고 하는 요로결석보다 더 심하다고 한다. 이 질환도 암환자처럼 모든 환자가 다 중증 통증은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통증 조절이 안되는 환자들이 많고,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도 상상을 초월하게 높은 용량을 쓰는(일반적 용량의 10배까지도) 환자도 있다.

최근 모 정부부처의 마약상 진통제 처방 사유에 대한 소명 요청을 보면서, 필자가 어릴 때 들었던 친척분의 끔찍한 얘기가 데자뷰처럼 생각난다. 요즘의 사회적인 마약 문제가 과연 이런 분들의 치료하고 연관성이 있을까?

중증 환자들이 마약 진통제 용량이 높다는 이유로 이분들의 처방을 못하게 하고, 감시하고, 삭감하고, 심지어는 처방하는 의사의 마약처방까지 못하게 한다고 한들 사회적인 마약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마약성 진통제의 용량 제한이 양날의 검처럼 사회적 순기능을 할지, 오히려 중증환자들의 고통만 가중이 될지, 환자, 의사,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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