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무시하는 변칙에 투자자 불안
시장 ·정치 간극 좁혀야 신뢰 회복

지금 전 세계 시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트러스 당시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이달 미국 채권시장에서 벌어진 일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놓고 오락가락 발언하면서 극도의 불확실성을 초래했던 7~11일 한 주간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 상승 폭은 0.50%포인트(p)로 9·11 테러 뒤인 2001년 11월 이후 23년 5개월 만에 가장 컸다.
한 마디로 ‘트럼프의 입’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보다 더 큰 충격을 시장에 안긴 셈이다.
이제 전문가들은 단순한 경기침체를 넘어 더 큰 아포칼립스(종말론) 상황이 도래할 것을 예측한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설립자와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모두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해임 추진이라는 유례 없는 일로 시장의 불신을 한층 키우고 있다.
관련 뉴스
이쯤 되면 상상해 볼 수 있다. 만약 미국이 내각제였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불신임 투표에 직면했을 것이다. 1기에서 이미 2020년 코로나 19 팬데믹 대응 실패, 의회 폭동 등으로 불신임 투표가 이뤄졌을 것이며 2기는 취임한 지 100일밖에 안 된 상황이지만, 지금과 같은 전 세계적 시장 혼란을 촉발한 이유로 정권 유지가 불투명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대통령제 국가다. 중간 평가나 견제는 의회와 언론, 그리고 다음 선거에 맡겨진다. 여기서는 내각제와 대통령제 중 어떤 제도가 우월한지를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그만큼 거대한 혼란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시장과 국가 운영에 미친 영향이 전혀 적지 않다는 점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대통령제이기에 트럼프는 아직 반전을 위한 무대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무대를 자신이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장과 정치의 간극을 좁히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관세 정책의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어느 나라에 얼마를 부과하겠다는 일차원적인 계산이 아니라, 글로벌 무역 질서를 어떻게 재편하고 미국 기업에 어떤 구조적 이익을 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둘째,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하루에도 몇 차례나 돌발 발언과 소셜미디어로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은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제도와 시장의 규칙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일 때 투자자들은 안정을 느낀다. 셋째,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정책을 펼칠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사실 지금의 혼란은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벌이는 일들을 살펴보면 이미 지난해 대통령선거 유세 과정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들은 한국과 달리 좋든 나쁘든 자신의 공약을 지키는 데 진심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트럼프가 시장과 기업의 요구에 맞게 궤도를 수정한다면 오히려 더 큰 환호를 받을 것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다시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는 오롯이 그의 선택과 전략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