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했던 '벚꽃 추경'이 물 건너갔다. 정부의 늦은 판단력과 정치적 대립의 콜라보다.
정부와 정치권이 맥을 못 잡고 허우적거리는 동안 한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고꾸라지고 있다. 믿는 구석으로 통했던 수출은 일찌감치 적신호가 켜졌다. 수출은 이달 중순까지 1년 전보다 5% 넘게 감소했다. 주요 10개 수출품 중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9개 품목의 수출이 모두 줄었다. 양대 수출 시장인 중국과 미국의 수출도 동반 감소했다.
성장률 전망도 최악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내수와 수출 모두 하방압력이 커지고 있어서다. 다수의 국내외 전문기관들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는 추세다. 이대로라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국 경제가 바닥 모르고 추락하는 사이 정부의 대응은 안일했다. 정부는 줄곧 "기존 예산안의 신속 집행이 우선"이라며 추경에 보수적인 태도만 고수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올해 1월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경제 여건 전반을 1분기 중 재점검하고 필요하면 추가 경기 보강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추경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시점은 1분기 이후로 미뤄뒀다. 당시 신속집행보단 추경안 편성을 좀 더 강하게 고민해봤다면 현재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 한국 경제에 잿빛이 드리웠다는 전망이 나왔을 때부터 움직였어야 했다. 올해 초 추경 준비를 서둘렀으면 적어도 1분기 이내에 집행에 들어가 고꾸라지는 경제에 마중물 역할을 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의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고 해도 5월 초면 이미 경제가 고꾸라질 때로 고꾸라진 상황에서 나온 '뒷북 추경'이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규모도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추경안 규모는 총 12조2000억 원이다. 정부는 이번 추경이 '경기 진작'이 아닌 '시급 현안 대응' 차원이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시급 현안으로 분류되는 통상 리스크와 내수 부진이라는 이중고를 이겨내긴 역부족이다. 당장 급한 불을 끄는 피해 복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부는 이번 추경안으로 경제성장률이 0.1%p 오를 것으로 추산한다. 그러나 당장 0%대 성장 가능성도 나오는 상황에서 큰 역할을 할지 미지수다.
내용도 엉망이다. 시급한 현안과 직접 관련되고 올해 안에 신속 집행이 가능한 사업을 중심으로 꾸렸다며 '필수 추경'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일단 끼워 넣고 보겠다는 항목들이 눈에 띈다. 특히 인공지능(AI) 경쟁력 제고 등은 한두 달 만에 생긴 문제가 아닌데도 급하게 추경에 포함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연 매출 3억 원 이하 자영업자에게 50만 원 크레딧을 지원하는 '부담경감 크레딧'이 실효성을 낼지도 의문이다. 소상공인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매출 부진인데 단발성 소액 지원으로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앞으로다. 어두운 세수 전망과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 내수 부진 등으로 6월 대선 이후 '포스트 추경'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때는 반드시 정부와 정치권의 '환상의 콜라보'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