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받아서 손해 볼 것이 없는데 왜 치료를 안 받으려 하세요?”
취재를 위해 결제했던 치료비 환불을 요구할 때 가장 답하기 어려웠던 것은 ‘굳이 왜 치료를 안 받고 환불을 하려 하느냐’는 질문에 이유를 대는 것이었다. 당장 치료비가 비싸더라도 실손보험금으로 대부분 보전이 되는 데다 증상에 비해 다소 과하더라도 ‘좋은 치료’를 통해 병을 고치자는 것인데 안 받으려는 까닭이 뭐냐는 거다. 반박할 명분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환불을 받긴 했지만, 과정은 불편했다. 만약 취재가 아니라 내 몸을 위한 치료였다면 아마 그대로 진행했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좋은 치료를, 비용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다면 거부할 이유는 없다. 합리적 선택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보험업계 관계자도 “과한 진료임을 알면서도 치료를 받고 있자니 또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귀띔했다.
실손의료보험은 매년 1~2조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누적 적자는 2조 원을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선 이러한 실손보험 누수 원인 중 하나로 보험가입자들의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를 지목한다. 일부 가입자들이 과도한 비급여 진료를 받는 등 ‘의료쇼핑’을 한다는 것이다.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누수로 힘들어하는데,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은 신나게 진료를 받고 다닌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허용 한도 내에서 최선의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것을 도덕적 해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실 환자 입장에서 경제적 허용 범위 내에서 가능한 최선의 치료를 받는 선택은 자연스러운 행위다. 올해 초 정부가 개최한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에 참여한 의료 관계자 역시 “보험은 최소한을 치료받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의료서비스를 선택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모럴헤저드·의료쇼핑 이전에 의료기관마다 천차만별인 치료비가 문제다. 비급여 진료와 가격 정보를 제공하는 ‘비급여 정보 포털’이 이달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의료시설 현장에서 실손보험 보장 한도에 맞춰 치료비를 ‘설계’해 과도한 비급여 진료를 권하는 실정에서 효과는 미미해 보인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아픈 사람들이다. 보험을 악용하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그들은 신나게 의료쇼핑을 하지 않는다. 최선의 치료를 받고 싶은 것이다.
실손보험 개혁의 핵심은 소비자 통제가 아니다. 비급여 진료 가격에 대한 실효성 있는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실손보험 개혁은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멍에를 벗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