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은 왜 한국에 와서 치킨을 외쳤나 [이슈크래커]

입력 2026-06-0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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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고깃집에서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겹살 회동을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고깃집에서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겹살 회동을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제국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방한 소식은 산업계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글로벌 테크 패권을 쥔 인물이 한국의 주요 기업들과 어떤 반도체 동맹을 맺고 협력의 청사진을 그릴지가 최대 화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그가 한국에 발을 내디딘 후, 대중의 눈길과 언론의 플래시는 딱딱한 회의장이나 엄숙한 발표장이 아닌 그의 '식탁' 위로 쏠렸습니다. 삼겹살과 소맥부터 야구장의 치맥, 편의점의 바나나맛우유와 비락식혜까지. 젠슨 황의 동선을 따라 연일 등장한 지극히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한국의 맛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첨단 산업 뉴스를 단숨에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문화 콘텐츠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화려한 정찬 대신 '홍대 고깃집' 택한 AI 제왕…소맥이 만든 스킨십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주요 그룹 총수들과 만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주요 그룹 총수들과 만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보통 글로벌 굴지의 기업 CEO가 방한할 경우, 이들의 식사 자리는 최고급 특급 호텔의 프라이빗 룸이나 보안이 철저히 유지되는 고급 정찬 식당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삼엄한 경호 속에서 오가는 대화 역시 철저히 비즈니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황 CEO가 선택한 첫 행보는 이러한 통념을 완전히 깨뜨렸습니다. 그는 방한 첫날 서울 홍대 인근의 평범한 고깃집을 찾아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 국내 주요 재계 총수들과 마주 앉았습니다. 원통형 철제 테이블 위에는 값비싼 와인 대신 한국인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삼겹살과 소주, 맥주가 올랐습니다.

이 장면이 대중과 언론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메뉴가 소박해서가 아닙니다. 그 기저에 깔린 한국 특유의 '회식 문화'라는 맥락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삼겹살에 소맥을 곁들이는 자리는 격식을 내려놓고 서로의 거리를 좁히며, 진솔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가장 상징적인 의식과도 같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AI 기업의 수장과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넥타이를 풀고 왁자지껄한 고깃집에서 소맥잔을 부딪치는 모습은, 그 어떤 화려한 업무 협약식보다 강렬한 파트너십의 시각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대중의 반응 역시 뜨거웠습니다.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글로벌 빅테크의 거물이 퇴근 후 고기를 굽고 술을 섞어 마시는 평범한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는 동선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젠슨 황이라는 인물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도를 급상승시켰고, 결과적으로 엔비디아라는 기업의 친숙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수출용으로 예쁘게 포장된 한국의 이미지가 아니라, 현지인들의 일상적인 삶의 방식 한가운데로 직접 뛰어들어 문화를 향유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가장 훌륭한 소통 전략이자 브랜딩이었습니다.

잠실야구장 치맥과 편의점 간식…완벽한 팬서비스가 된 '자연스러운 소비'

▲엔비디아가 BBQ 잠실야구장점에 단체 주문한 크런치순살크래커. (연합뉴스)
▲엔비디아가 BBQ 잠실야구장점에 단체 주문한 크런치순살크래커. (연합뉴스)
홍대 고깃집에서 시작된 그의 현지화 행보는 잠실야구장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시구 행사를 위해 야구장을 찾은 황 CEO는 언론을 향해 "한국의 KFC(Korean Fried Chicken)를 즐기기 위해 왔다"며 유쾌한 농담을 던졌고, "치맥보다 좋은 것은 없다"며 '치맥'이라는 한국식 신조어를 직접 언급하는 센스를 발휘했습니다. 실제로 엔비디아 측은 이날 잠실운동장 인근의 프랜차이즈 치킨 매장에서 무려 113마리의 치킨을 단체로 주문하며 그의 '치맥 사랑'이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K드라마를 통해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치맥 문화를 글로벌 테크 리더가 직접 야구장이라는 완벽한 장소에서 재현해 낸 것입니다.

그의 소탈한 식도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방한 일정 중간중간 시민들과 취재진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뜻밖의 간식들이 등장했습니다.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연상시키는 발음의 국내 유명 견과류 과자를 비롯해, 한국인들의 국민 간식인 바나나맛우유와 전통 음료인 비락식혜를 직접 나눠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첨단 AI 산업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이 동네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한국의 대중적인 음료와 과자를 손에 쥐여주는 모습은, 딱딱한 비즈니스맨의 이미지를 벗고 대중과 직접 호흡하려는 최고의 팬서비스로 작용했습니다.

식품업계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쏟아부어도 얻기 힘든 전대미문의 홍보 효과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열광한 포인트는 철저히 기획된 협찬이나 어색한 PPL(간접광고)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자신의 방한 동선 속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을 찾아 소비하는 날것의 경험이었기에 대중의 신뢰와 흥미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모델로 나왔는가"를 따지던 시대에서, "진짜로 무엇을 즐기고 맛보았는가"라는 진정성 있는 스토리가 콘텐츠의 확산 속도를 좌우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무엇'을 넘어 '어떻게' 먹는가…글로벌 킬러 콘텐츠로 진화한 K푸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8일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양재 사옥에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8일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양재 사옥에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젠슨 황 CEO의 이번 방한 일정이 남긴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현재 K푸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과 확장성을 지니고 있는지 재확인했다는 점입니다. 과거 한국의 식품 수출은 주로 라면, 김치, 고추장 등 단편적인 가공식품의 맛과 품질을 알리는 '제품 중심'의 1차원적인 접근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세계인들은 단순히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한국인들이 그 음식을 '어떻게 소비하고 즐기는가'하는 문화적 맥락 자체를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기판에 삼겹살을 굽고 남은 기름에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 과정, 소주와 맥주를 황금 비율로 섞어 회식의 분위기를 띄우는 문화, 탁 트인 야구장에서 응원가와 함께 즐기는 바삭한 치킨과 시원한 맥주, 그리고 식후에 편의점에 들러 달콤한 바나나맛우유로 입가심을 하는 일련의 행동 양식들이 모두 흥미로운 K콘텐츠로 묶여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황 CEO는 이러한 한국의 식문화 트렌드를 가장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동선에 맞춰 가장 효과적으로 재현해 낸 훌륭한 문화 소비자였습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내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나갔고, 홍대 앞 고깃집의 왁자지껄한 인파, 야구장의 산더미 같은 치킨 박스, 손에 들린 노란색 단지 우유는 모두 '먹는 행위'를 넘어 전 세계가 지켜보는 '시각적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이번 방한의 핵심 목적은 명확히 AI와 반도체 동맹이라는 거대한 산업적 과제에 있었지만, 대중의 뇌리에 가장 깊고 친숙하게 각인된 것은 황 CEO의 유쾌한 식탁이었습니다. 그가 한국 시장에 강력하게 띄우고 간 것은 혁신적인 GPU뿐만이 아닙니다. 한국 고유의 일상적인 맛과 소비 방식이 글로벌 무대에서 얼마나 매력적인 문화적 무기가 될 수 있는지, K푸드의 진정한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해 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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