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말한 '그 시간'이 지났습니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는 25일 0시, 한국시간으로 같은 날 오후 1시.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공식 종료라고 선언했던 시간입니다.
앞서 이스라엘이 13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이란 핵시설 등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하면서 중동 정세는 격랑에 빠져들었습니다. 전 세계 경제도 순식간에 타격을 입었는데요. 국제 유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2022년 이후 최대 일간 상승 폭을 기록했고요. 뉴욕 주식 시장 3대 지수도 하락하는 등 얼어붙은 투자 심리를 보여줬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습으로 분쟁의 새 국면을 열었습니다. B-2 전략폭격기에 신형 벙커버스터 폭탄 등을 활용한 전격적인 폭격이었죠. 다만 곧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전격적인 휴전도 발표한 겁니다.
휴전 발표 이후에도 한때 양국은 낮은 수준의 공격과 보복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높였는데요.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2발을 발사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은 이란 수도 테헤란 인근의 레이더 기지를 제한적으로 타격했습니다.
다행히 공격은 잦아들었고 아슬아슬하게 유지된 휴전을 거쳐 두 나라 간의 갈등도 일단은 봉합된 모양샌데요. '완전한 평화'로 보기엔 무리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집니다.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군사 분쟁은 이른바 '12일 전쟁'으로 명명됐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이유는 우선 군사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핵 관련 이란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건데요. 때마침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최근 이란의 핵확산금지조약(NPT) 규정 중대 위반 사실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이 군사용 수준에 근접했고, 핵탄두 소형화 기술도 확보했다는 관측이 나왔는데요. 이란은 자국 안보에 대한 '실질적 위협'을 체감했고 무력으로라도 핵 무기화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죠.
이스라엘 내부의 문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는데요. 팔레스타인 하마스 공격에 대응하지 못한 책임, 내분과 부패 스캔들 자국 정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경책을 선택했다는 거죠. 초정통파 유대교도 '하레디'에 대한 병역 확대를 두고서도 정부 불신임 투표에 직면했는데요.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전체 120표 중 반대 61표로 가까스로 부결되긴 했지만, 만약 통과됐다면 조기 총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조기 총선 시 네타냐후 총리의 패배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죠.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이 15~1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스라엘 유대인 응답자의 83%가 이란 공격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는데요. 유대인은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약 75%를 차지합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두 번째 홀로코스트, 핵 홀로코스트를 허용할 수 없었다"며 선제공격이 불가피했다고 밝혔으나, 이란은 이를 '전면전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곧바로 보복에 나섰습니다. 이후 양측은 미사일을 날리면서 공격을 이어갔죠.
상황을 지켜보던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B-2 폭격기와 벙커버스터 폭탄 등 미 군사력을 활용해 이란의 핵 시설을 타격하면서 분쟁에 직접 개입했습니다. 이란은 카타르와 이라크의 미군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보복 공격했는데요. 다만 미국과 카타르에 공격 계획을 미리 통지하면서 '약속 대련'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어 23일엔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이 휴전을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미 동부 시간 24일 0시까지 6시간 동안 양측이 계획돼 있던 마지막 군사작전을 마치고 △이란이 12시간 동안 공격을 중단하고 △이스라엘도 12시간 동안 공격을 멈춘 게 확인되는 3단계 순서에 따라 25일 0시를 기해 휴전이 이뤄지는 방식이었죠.

휴전 발표 직후 이란과 이스라엘은 나란히 '우리가 이겼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성명에서 "이스라엘은 트럼프 대통령의 양국 휴전안에 동의했다"며 "향후 (이란이) 휴전 협정을 위반하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는데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밤사이 내각 회의를 소집해 이란에 대한 '일어서는 사자' 군사작전의 모든 목표를 달성하고 그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고 총리실은 전했죠.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에얄 자미르 참모총장도 합동참모본부 회의에서 "우리는 이란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수년간 지연시켰다"며 "이스라엘군은 최고의 성과를 거뒀고 정보국도 전례 없는 성과를 달성했다"고 자평했습니다.
이란도 성명을 통해 "적(이스라엘)이 후회 속에 패배를 받아들이고 일방적으로 침략을 멈추게 하는 승리를 거뒀다"고 전했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도 대국민 성명에서 "시온주의자 정권(이스라엘)의 객기와 선동으로 강요받은 12일간의 전쟁이 휴전된 것을 목격한다"며 "전쟁 종식은 이란의 의지로 결정된 것"이라고 전쟁을 끝낸 건 결국 이란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이 같은 태도가 진정한 갈등 봉합, 평화에 대한 약속으로 읽히진 않습니다. 오히려 전후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내러티브 싸움'에 가까운데요. 이란은 국제 제재와 내부 불만 속에서 정권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려 하고, 이스라엘은 안보 리더십을 내세워 정치적 지지 기반을 다지는 모양샙니다.

미국 측이 압박해 이뤄진 이스라엘과 이란의 휴전 합의는 가까스로 파기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우선 이스라엘이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이란의 핵 무기화 우려가 완전히 해소됐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이동한 트럭 움직임 등을 근거로, 이란이 공습에 앞서 농축 우라늄을 빼돌린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죠. 실제 미국 공격 이후 외부 방사능 수치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도 우라늄이 옮겨졌을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외신들을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이란이 최대 핵 시설인 나탄즈 지역 남쪽 4㎞ 지역 산악 지대에 구축한 지하 핵 시설에 농축 우라늄을 은닉했을 가능성을 크게 점치고 있는데요. 이 지역은 이른바 곡괭이 산(Pickaxe Mountain)으로 불리죠. 2023년 처음으로 그 존재가 드러난 바 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시설은 이란 중부 곰주(州)에 있는 기존 포르도(지하 80~90m)보다 깊은 지하 100m(330피트) 인근에 자리한 탓에 미국이 이번 공습에 동원한 벙커버스터 GBU-57 폭탄으로 한 번에 파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고수할지, 제재 해제를 노린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지 또다시 갈림길에 선 상황인데요. 만약 은닉한 농축 우라늄으로 핵 무기화에 다시금 힘을 싣는다면 중동 지역 갈등의 불씨는 언제라도 되살아날 수 있다는 거죠.
이스라엘과 이란은 공식적으론 전쟁을 끝내는데 뜻을 모았지만, 핵 개발과 안보 위협을 둘러싼 근본적인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나 신뢰 회복 없이 이뤄진 이번 휴전은 언제든 다시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큰데요. 정치적 명분과 국제 여론전을 앞세운 '종전 선언'만으로는 불안을 잠재우기 어려운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