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건설의 불참 선언 이후 장기 표류가 우려됐던 부산 가덕도 신공항 공사의 기류가 바뀌는 모습이다. 정부가 현대건설의 이탈 배경이 된 공사 기간을 확대하는 등 입찰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사업 참여를 고려하는 곳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본지 취재결과 롯데건설과 한화 건설부문, DL이앤씨는 가덕도 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참여 여부를 두고 내부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대형 건설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사 기간과 공사비 등 입찰조건을 완화할 가능성을 내비친 데 따른 것이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조건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가 있어서 컨소시엄에 참여할 지를 살펴보고 있는 단계"라며 "가덕도 신공항 사업 참여를 검토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건설과 함께 이름이 거론된 다른 건설사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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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국토부가 지난달 초 부지 조성공사 수의계약을 중단하면서부터 멈춰 있다. 당시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입찰공고의 공사 기간을 초과하는 기간을 반영한 기본설계를 제시했고 국토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계약이 진행되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국토부가 공고한 84개월(7년)에서 24개월이 추가된 108개월(9년)의 공사 기간을 반영한 기본설계를 내놨다. 가덕도 신공항의 공사 규모와 난이도 등을 고려했을 때 안전·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공사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현대건설은 기본설계 과정에서 250여 명의 전문가와 600억 원의 비용을 투입해 6개월간 기술검토를 진행했다.
계약 중단 후에 현대건설은 "지역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공항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무리한 공기 단축 요구와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또 "사익 때문에 국책사업 지연·추가 혈세 투입을 조장한다는 부당한 오명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 안팎에서는 매력보다 위험이 커 수차례 유찰된 사업을 맡았다가 공사비를 더 높이려 생떼를 쓴다는 오해까지 받은 현대건설이 자발적으로 다시 사업에 참여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았다. 현대건설의 대체자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사업이 오랜 기간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에 대한 국토부와 현대건설 사이의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전문가들과 여러 대안을 모색 중”이라면서 “현대건설의 행위가 국가계약법 또는 부정당업자 제재의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서 부처 간에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새로운 건설사가 참여하고 가덕도 신공항 공사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분한 공사 기간이 보장돼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최소한 현대건설이 요구했던 것 이상의 기간과 그에 상응하는 공사비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지금 검토 중인 곳들도 함께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착공 이후 계획보다 공사 기간이 늘어나거나 비용이 더 필요할 수 있다는 것에서도 충분한 공감대를 이뤄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달 초 부산시가 제안했던 것처럼 시공 과정에서 지반, 기후 변화 등 불가피한 여건 변화가 있다면 기술적으로 검토해 공기 연장을 수용하는 것도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가덕도 신공항 공사는 규모가 크고 까다로울 뿐 아니라 변수가 많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사업 대상지인 가덕도는 국내 공항 건설 역사상 가장 까다로운 입지로 꼽힌다. 전체 면적의 약 59%가 해상 매립지로 구조물 대부분이 바다 위에서 시공되기 때문이다.
특히 활주로가 들어설 해역에는 최대 60m에 달하는 초 연약지반과 점토층이 분포돼 있어 장기간에 걸친 지반 개량과 성토 작업이 필수다. 지반 안정화와 압밀 기간, 침하 허용 기준 등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하며 활주로 하부는 침하 허용 기준이 10cm 이내로 설정돼 있다.
방파제, 활주로, 여객터미널 등 주요 구조물 대부분이 해상에서 동시에 시공돼야 하는 복합 공정이라는 점도 공사 난도를 더욱 높인다. 시공 순서를 자유롭게 조정하기 어렵고 기상 악화와 자재 수급 불안정 등 외부 변수에도 상시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정 관리 부담이 크다.
장일한 아주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수심도 깊고 해저 면에 두꺼운 연약층이 있어서 장기적인 침하 가능성과 거동의 불확실성이 크다"며 "지반 안정화가 부족한 상태에서 구조물을 시공하면 활주로의 균열이나 변형 등 장기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도 2016년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가덕도 신공항 7대 불가론'을 통해 태풍 등 기상 요인과 해상지반 조건으로 인해 시공 난도가 높다고 밝힌 바 있다.
이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무리한 일정은 결국 안전성을 해칠 수밖에 없고 정부 안대로 공사를 강행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시공사 몫이 된다"며 "기업으로선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토부는 입찰공고를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진행한다는 방침 외에는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김정희 국토부 가덕도신공항건립추진단장은 "사업이 중단되고 난 이후부터 현재 건설사나 전문가 등과 계속 접촉하면서 의견을 듣고 있다"며 "조건 등을 조율하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