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하이닉스 미국 설비 투자 수혜 전망
리스 전기차도 ‘세금 혜택 절벽’…북미 생산 요건 강화에 촉각
조건 없는 적용 → 즉시 종료 가능성…배터리 기업 공급망 압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미 행정부의 산업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미국 상원이 제안한 세액공제 개편안이 국내 산업계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 분야 세액공제 확대에 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예측 가능한 인센티브'라는 점에서 반기는 분위기지만, 전기차는 세제 혜택이 축소되면 희비가 엇갈린다.
18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상원에 계류된 감세 법안에는 반도체 제조업체의 공장 투자 세액공제를 기존 25%에서 30%로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2022년 통과시킨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의 세제 보완책으로, 2026년 말 종료되는 기존 혜택 전까지 기업 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조치다.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신규 전기차 구매자에게 지급되던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법 공포 180일 이후 종료하고 중고 전기차나 리스 차량에도 단계적으로 세제 혜택을 없애는 방안을 제시했다. 리스용 차량의 경우에도 북미 조립 및 광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즉시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같은 상원 제안은 국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업체에 산업별로 상반된 영향을 줄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세액공제 확대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트럼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실제 입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은 얼마를 받을지, 언제 지급될지 예측이 어려운 반면, 세액공제는 투자만 하면 착공 직후부터 청구가 가능해 전략 수립이 훨씬 수월하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오락가락할수록, 예측 가능한 세액공제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설비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시에 20조 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고, SK하이닉스는 후공정 중심의 북미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기차·배터리 산업은 정책 변화에 따른 직격탄이 불가피하다.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가 사라질 경우,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수요가 둔화될 수 있다. 이는 북미 시장 내 전기차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현대차·기아에는 부담 요인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올해 1~5월 미국에서 총 4만8838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시장점유율 11.2%를 기록,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현대차그룹은 3월 미국 조지아주에 세 번째 생산거점인 'HMGMA'를 준공하고 아이오닉5, 아이오닉9 생산에 들어갔다. 연간 생산규모를 30만 대에서 50만 대까지 확대할 계획이지만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혜택 축소에 따른 수요 불확실성은 장기 전략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국내 완성차 기업에 미국 시장 내 전략 재조정을 요구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판매 확대 일변도 전략에서 벗어나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병행한 포트폴리오 전략을 지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투자와 생산 전략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한편, 북미 시장 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배터리 업계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상원안에 따르면 배터리 생산세액공제(AMPC)의 폐지 시점을 기존 하원 초안보다 1년 늦춘 2033년으로 되돌렸고 핵심 광물 조달 요건에 일정 비율의 ‘우려집단이 아닌’ 공급망 비중을 제시하며 다소 완화된 기준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NH투자증권 주민우 연구원은 “하원안 대비 K배터리에는 소폭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며 “구매세액공제 폐지 일정이 앞당겨진 점, 상업용 차량도 북미 생산요건 미충족 시 즉시 혜택이 끊기는 점 등을 고려할 때, IRA 축소가 2026년 미국 전기차 시장의 역성장 가능성을 키운다”고 진단했다.
FEOC(우려 외국기업) 기준 완화 등 일부 완화 조항도 있지만, 미국 내에서 ‘중국 견제’ 기조는 여전히 유지되는 만큼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북미 투자 기조에는 당장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생산세액공제는 일몰제로 설계돼 있었기 때문에 정책 변경 자체보다 시장 수요 위축이 더 우려된다”며 “수요 측면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향후 전략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