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불 몰랐다고요?…사흘·글피도 모르는 세대, 어휘력의 민낯 [해시태그]

입력 2025-06-1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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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글피·착불 뜻은? 문해력 질문 이어지는 현실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착불이요? 네… 요금은 지금 내면 되나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가 씁쓸한 웃음을 남겼는데요. 이 웃음이 참 묘합니다. 작성자는 중·고등학생들이 택배를 보낼 때 ‘착불’에 표시해놓자 “착불 맞으세요?”라는 질문을 건넸는데요. 그런데 당연한 듯이 “네”라고 대답한 상대방이 “근데 요금은 지금 내는 거죠?”라고 되묻는다는 상황을 소개했죠.

반복되는 이 풍경은 단순한 해프닝일까요? 아니면 우리 사회 어휘력의 민낯일까요?


(조현호 기자 hyunho@)
(조현호 기자 hyunho@)


‘착불’은 물건을 받은 후에 돈을 치른다는 기본적인 택배 용어입니다. 하루에도 몇 개씩의 택배를 받는 현대에 너무나 익숙한 단어여야 하는데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택배비 안 냈는데요?”, “착불이요?”, “그런 줄 몰랐어요”라는 반응은 반복되고 있죠. 더 놀라운 건 이게 학생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인데요. 성인들조차 착불의 의미를 몰라 접수를 취소하거나, 현장에서 실랑이를 벌인다는 증언도 나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착불’은 시작에 불과한데요. “사흘 뒤에 보자”는 말에 “사흘이 4일인가요?”라고 되묻는 학생, “심심한 사과”를 듣고 “재미없는 사과네요?”, “사과 앞에 심심하다를 왜 붙이냐”라고 받아치는 이들도 나오죠. ‘사흘’은 ‘셋째 날’, ‘글피’는 ‘모레 다음 날’, ‘심심하다’는 ‘마음이 간절하고 깊다’는 의미인데,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예 ‘감’을 잡지 못하는 건데요. 언어의 의미는 맥락에서 배우기 마련인데, 맥락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단어도 떠돌 수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오해는 지금도 반복 중이죠. “금일중으로 제출해주세요”라는 공지에 “금요일까지라는 말인가요?”라며 되묻는 학생부터 ‘족보 있는 수업’을 ‘족발 보쌈 세트가 나오는 수업’으로 이해하고, “이부자리 깔아라”는 말을 “별자리를 보라는 건가”로 오해했다는 사례도 온라인에 여럿 공유됩니다. 단어는 있지만, 그 의미를 잇는 다리가 끊어진 듯한 기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상어 해체의 현실인데요.

흥미로운 건 영어 단어를 모르면 “나 영어 약해”라며 부끄러워하면서도, '사흘'이나 '착불' 같은 단어는 “요즘 누가 그런 말 써요?”, “한자어는 옛날 말”이라며 외면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어른들끼리 쓰는 말이라고 단정하고 관심조차 두지 않거나, 그걸 모르는 걸 문제로 여기지 않는 흐름이죠. 어휘력을 부족하다고 인정하지 않고 웃어넘기거나, “요즘 말 아닌 걸 왜 알아야 하냐”고 되묻기까지 하는데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심각한 것은 비단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학부모들도 가정통신문이나 교육청 공문을 이해하지 못해 교사에게 전화를 걸거나 ‘요약본을 따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요. ‘우천 시 변경될 수 있음’을 두고 우천시가 어디냐고 묻거나, ‘중식 제공’ 문구에 “우리 아이는 중국음식 안 좋아한다”고 항의하는 사연까지 다채롭죠.

한편으론 모르는 걸 드러내기 싫어하는 심리도 있는데요. 질문을 꺼리고, 아는 척하거나 그냥 넘기려는 태도죠. 특히 “이 정도 단어도 몰라?”라는 시선을 두려워해 아예 말문을 닫아버립니다. ‘모르면 검색’이라지만 실상은 검색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데요. 이건 질문을 꺼리는 분위기 탓도 있습니다. “모른다”고 말하면 무시당할까 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되면서 착오가 반복되죠. ‘모르면 물어봐야지’가 아니라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지’가 먼저인 상황인 셈입니다.

2023년 한 교원단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10명 중 9명은 “학생들의 어휘력과 문해력이 예전보다 낮아졌다”고 느낀다고 답했는데요. 실제로 도서관 대출량은 계속 줄고 있으며, 청소년 독서율도 매년 감소 중입니다. OECD의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는 한국 학생의 독해력 순위가 계속 하락 중인데요. 특히 상위 성취자인 5수준 이상 학생 비율은 13% 내외로 비슷하게 유지됐지만, 하위 집단인 2수준 미만 학생 비율이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독해 점수는 높지만 실용 문해력과 맥락 이해력은 부족하다는 분석이 잇따르는 이유죠.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


이때 비판보다 필요한 건 돌봄인데요. “요즘 애들 무식하다”는 말은 아무 해결도 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건 “왜 모르게 됐는가”인데요. 아이들이 단어를 경험할 기회를 어떻게 늘릴 것인가가 핵심이죠. 부모, 교사, 사회 모두가 같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 문해력은 이들 모두의 과제가 됐는데요. 가정에선 대화를 통해 다양한 어휘를 접할 기회를 줘야 하고, 학교는 시험용 독해가 아닌 실용문과 설명문 중심의 수업을 고민해야 합니다. 사회도 공공언어를 단순화하거나, 쉬운 설명을 덧붙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죠. 독서와 토론, 뉴스 읽기 같은 활동은 여전히 유효한 문해력 향상법입니다.

단어는 단순한 낱말이 아닌데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회를 이해하고, 세상을 해석하는 도구죠. 착불이라는 말 하나로도 혼란이 생긴다면, 단어를 모른다를 넘어 심각해진 소통법으로 넓혀봐야 하는데요. 사흘이 며칠인지, 착불이 누가 내는 건지를 모른다는 건 어쩌면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더 큰 ‘말의 틈’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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