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유럽 최대 HVAC 기업 인수
레녹스와 합작법인, 북미시장 공략
LG, 'ES본부'로 관련 사업 이관
'냉각솔루션 TDR' 조직도 신설

전 세계가 AI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기술 각축전에 돌입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연산 인프라’, 즉 데이터센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신 그래픽추진장치(GPU)를 장착한 초대형 AI 데이터센터가 ‘국가 기간산업’처럼 자리잡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가 간 AI 데이터센터 경쟁이 ‘쩐(錢)의 전쟁’ 양상으로 치닫는 가운데 막대한 전력 소비와 열 배출로 인한 기후 에너지 문제가 새로운 위험요소로 부상하고 있어 전략적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지난해 415TWh(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945TWh, 2035년에는 최대 1700TWh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이는 일본 전체 전력 사용량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특히 생성형 AI는 일반 검색보다 20~30배 이상 많은 전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알려져 데이터센터가 국가 전력망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에서도 이같은 흐름은 가속화되는 추세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글로벌 AI 3강 도약”을 천명하며 AI 데이터센터 전국 확대를 공식화했다. 최신 GPU를 대량 탑재한 ‘AI 고속도로’ 건설이 그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이에 따라 SK텔레콤, KT, 네이버, 삼성SDS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지방 거점에 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을 앞다퉈 발표했다.
문제는 그 뒤에 숨은 에너지 딜레마다. 고성능 AI 반도체는 연산 효율만큼이나 발열도 심하다. 이를 식히기 위한 냉각 설비에는 전체 전력 소비의 절반 가까운 에너지가 투입된다. AI 데이터센터가 늘수록 국가 전력망의 안정성도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산업계는 이 같은 흐름을 기회로 보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유럽 최대 냉난방공조(HVAC) 업체인 ‘플랙트그룹’을 약 2조2000억 원에 인수하며 ‘열 관리’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LG전자도 공조사업을 별도 에너지솔루션(ES) 본부로 이관해 대응에 나섰고, SK이노베이션은 AI 데이터센터 전용 에너지 설비 사업에 진출했다. 배터리 3사도 전기차 시장 정체를 기회 삼아 데이터센터용 ESS(에너지저장장치) 투자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력 문제는 민감한 ‘병목지점’이다. 지역 편중 문제도 크다. 특정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집중될 경우 전력 수요가 급증해 기존 산업·생활 전력까지 위협할 수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에서는 이 문제를 계기로 데이터센터 입지 제한, 전력 누진세, 에너지세 강화 등 새로운 규제 도입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업계에선 “AI가 요구하는 전력량을 감당하기엔 속도·규모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김진형 KAIST 명예교수는 “생성형 AI처럼 연산량이 많은 기술은 일반 검색보다 최대 30배 이상의 전력을 소모한다”며 “우리처럼 에너지 상황이 어려운 나라는 고효율·저전력 AI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 모델을 작게 만들고 잘 튜닝하거나, 국가·산업 간에 모델을 공유해 중복 학습을 줄이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며 “무작정 ‘우리도 만들어야 한다’는 방식보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