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 50㎏ 여성과 100㎏ 남성이 똑같을리가…‘성차의학’ 무엇?

입력 2025-06-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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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성차의학’ 본격 태동…소화불량부터 대장암까지 ‘정밀의료’ 한 축으로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들의 포장박스와 첨부문서에 용법·용량 설명이 적혀있다. (한성주 기자 hsj@)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들의 포장박스와 첨부문서에 용법·용량 설명이 적혀있다. (한성주 기자 hsj@)

약국에서 구매한 소화제 포장에 적힌 용법·용량을 보면 성인은 1정을 복용하라는 설명이 쓰여있다. 50㎏ 여성과 100㎏ 남성의 몸집은 두 배 가까이 차이 나는데, 모두가 한 알을 먹는 것이 최선일까? 커피, 샌드위치, 마라탕 속 채소까지 개인 맞춤형 주문이 당연한 시대에 건강관리 영역은 예외로 남아있다.

1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여성과 남성을 단순히 성인으로 ‘퉁’ 쳐온 기성 시각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질병 발생과 예후가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 의학 전문가들은 올해 1월 아시아 최초로 대한성차의과학회를 설립했다. 여성과 남성 각각을 위한 최선의 치료법이 확립되면 병원과 약국의 풍경도 점차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성차의학’ 무엇?

성차의학은 생물학적·사회문화적 성별 차이가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려는 연구 분야다. 의학계의 전통적인 접근 방식이 오랫동안 간과했던 ‘빈틈’을 포착한 비교적 신생 학문이다. 미국에서는 국립보건원(NIH)이 1991년 여성 건강 이니셔티브(WHI)를, 1995년 식품의약국(FDA)이 여성건강사무소(OWH)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동력을 얻었다.

한국에서는 성차의학이 조명되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2023년 분당서울대병원에 첫 성차의학연구소가 문을 열었고, 올해 1월 성차의과학회가 출범했다. 이 학회에는 의학, 약학, 간호학, 식품영양학 등 관련 분야 전문가 총 93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AI퍼플렉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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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코로나 백신, 부작용은 여성이 약 3배라고?

환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도 머지않았다는 평가다. 예방접종, 건강기능식품 섭취, 건강검진까지 일상적인 의료 이용에 모두 성차의학이 접목되기 때문이다. 성별에 따른 구체적인 영향을 밝혀낸다면 그동안 감수해야 했던 의약품 부작용을 피하고 건강관리 활동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코로나19 백신은 성차의학의 중요성을 대중적으로 각인한 대표 사례다. 코로나19 백신은 성차의학의 중요성을 대중적으로 각인한 대표 사례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20년 12월 14일부터 2021년 1월 13일까지 미국에서 접종한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신고자 6994명 중 여성의 비율은 79.1%로 남성의 3.7배였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확인됐다. 질병관리청이 2021년 2월 26일부터 2022년 3월 1일까지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자 가운데 아나필락시스 발생자 188명 중 62.8%가 여성으로 남성의 2.85배에 달했다.

전 세계 정부는 체중과 성별을 불문하고 모든 성인에게 같은 백신을 접종했다. 100㎏이 넘는 북미 남성과 40㎏ 내외의 아시아 여성에게 동일한 용량을 투약한 것이다. 성호르몬의 면역반응 조절 기능도 무시됐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면역을 억제하고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은 면역을 강화한다. 이 때문에 여성의 몸에서는 백신이 항체 생성을 촉진하면서 염증을 일으키는 사이토카인 분비도 과도하게 증가하기 쉽다. 코로나19 백신이 상용화한 지 5년이 지났지만 남성에서 백신 효과를 높이고 여성의 부작용 위험을 줄이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AI퍼플렉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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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챙기는 유산균, 중년 남성은 특히 중요하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건강기능식품도 성별에 따라 섭취 필요성이 다르다. 남성 중에서도 55세 이상은 유산균 섭취가 권장된다. 이들은 장내 유익균이 부족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2021년~2022년 대장 선종 및 대장암으로 진단된 환자들의 대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환자군 대비 건강한 대조군에서 장내 유익균이 유의미하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55세 이하에서 유산균과 낙산균 분포가 두드러졌다.

실제로 국내 인구 가운데 중년 남성 대장암 환자는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2023년 기준 전체 대장암 환자 18만2606명 중 남성은 10만8043명으로 59.1%를 차지했다. 특히 60~69세 대장암 환자는 남성이 3만7653명으로 여성 2만1124명 대비 1.78배 많았다. 물론 장내 유익균을 ‘대장암 명약’으로 넘겨짚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내 남성암 사망률 3위가 대장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55세 이상 남성은 누구보다 유산균 섭취 습관이 필요한 인구집단이다.

(AI퍼플렉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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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소화제 복용했는데…잘 듣는 남성, 안 듣는 여성?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소화제가 여성에게는 무용지물일 수 있다. 남성과 비교해 여성의 소화불량은 더욱 복잡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뇌와 소화기관은 ‘뇌-장관-마이크로바이옴 축’ 통신 체계를 활용해 신호를 주고받는데, 이 체계를 자극하는 요소는 성별에 따라 다르다. 남성은 산, 그렐린(위 운동을 촉진 호르몬), TRPV1(통증 수용체) 등의 역할이 크다. 반면 여성은 우울, 불안 등이 핵심 인자다. 게다가 여성은 내장과민성을 담당하는 뇌 속 편도체(amygdala)가 남성보다 10% 이상 크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트로핀분비인자(CRF) 반응도 더욱 민감하다.

이런 차이로 인해 같은 소화제도 효과는 성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일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성별에 따라 원인이 다를 가능성이 크다. 여성은 남성보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소화불량, 복통, 변비, 설사 등의 증상을 보이기 쉽다. 진료실에서는 여성 환자를 치료할 때 스트레스, 우울, 불안 증상을 파악하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라포 형성을 위해 더욱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환자에 따라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처방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AI퍼플렉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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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태동하는 성차의학, 앞으로 일으킬 변화는?

국내 전문가들은 병원 이용과 질병 치료에 대한 전 국민적 인식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여성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남성의 건강 사각지대를 해소하기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대한성차의학회 초대 회장)는 “여성 대장암은 주로 우측 대장에서 발생하고, 여성 대장선종은 납작한 모양이라서 발견하기 까다롭다”라며 “대장암 스크리닝을 위한 대변검사는 남성 환자 발견에는 유리하지만, 여성은 민감도가 부족해 효용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됐음에도 국내 대장암 진단 가이드라인에는 이런 사실이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성 건강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성차의학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70대 이상 남성 18%가 골다공증을 앓고 있지만, 치료를 받는 사람은 그중 16.2%에 불과하다”라며 “유방암에 걸린 남성은 여성 환자에 비해 생존 기간이 2년 짧고, 현재 국내에서는 유방암이 여성 질환으로 여겨지는 탓에 남성은 유방암 2차 약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한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김 교수는 성차의학이 향후 ‘정밀의학’의 한 축으로 입지를 다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밀의학은 평균적인 환자를 상정하는 기존 의학과 달리, 환자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최선의 의학을 말한다.

김 교수는 “소아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는 문장에 거의 모든 의사가 동의하지만, ‘여자는 작은 남자가 아니다’ 라고 인식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라며 “여성과 남성 중 어느 한 성을 표준화된 몸으로 채택하면, 채택되지 못한 성별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학제 진료, 신약, 신의료기술 개발에서 나이와 성별 차이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며 “특히 연구개발 투자 시 일정 부분은 성차 연구에 할애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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