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나 선거의 꽃은 막말인가. 6·3 선거가 종착점에 다다르려 하니 어느 선거 부럽지 않은, 거친 입들의 다채로운 네거티브 향연이 이어진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가 지난달 27일 TV토론에서 한 여성 신체 발언은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의 언어 성폭력이다. '순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 정서와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필터링 수준에 불과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아들이 해당 발언을 한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 후보가 이번 발언을 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긴 어려워 보인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 후보는 사과했지만 개운하지 않은 뒷맛이 남는다.
대선을 엿새 앞두고 나온 유시민 작가의 '설난영(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발언'도 집중포화를 받기 충분하다. 앞서 유 작가는 한 유튜브 프로그램에서 설씨를 향해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이었고 김 후보는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이었다. 대학생 출신 노동자와 찐(진짜) 노동자가 혼인한 것"이라며 "설씨가 생각하기에 김 후보는 너무나 훌륭한 사람이다. 본인과는 균형이 안 맞을 정도로 훌륭한 삶을 산 대단한 남자와의 혼인을 통해 고양됐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발이 공중에 떠 있다. 제정신이 아니다.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왔다"라고 평가했다. 노동과 인권에 누구보다 가깝게 서 있는 진보 스피커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표현이다.
유 작가는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말한 데 대해 사과했고, 여성 혹은 노동자 비하 논란엔 해명했다. "'소위 명문대 나온 남자와 혼인하면 신분이 상승한다', 그렇게 말한 게 아니다"라며 "김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비방하는 캠페인을 해왔는데, 그러면 배우자가 야당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남편에게 비판적 거리감을 가져야 조언을 할 수 있는데, 남편을 우러러보기 때문에 비판적 조언을 하기 어렵다. 본인도 남편을 따라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유 작가의 발언이 설 씨의 언행이 나오는 내적 이유를 추정하는 발언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으나, 여성 노동자를 주체적 가치관을 갖기 어려운 존재로 인식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이재명 후보가 "본인이 사과했다니까 우리 국민께서 용서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한 점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용서는 우리가 알아서 할 몫이다.
12일 공식 대선 운동 첫날 '미스 가락시장'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던 김문수 후보가 최근 유세 현장에서 딸의 결혼 과정과 가정사를 소개하며 과거 국내 한 대기업의 가정사를 언급한 점은 전형적인 감수성 결여 장면이다. 미스 가락시장 발언으로 여론의 경고 카드를 받았는데도, 자신의 가족을 추켜세우려 타인의 고통을 언급하는 건 몹시 당황스럽다.
지금 우리가 치르는 때아닌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인한 탄핵과 파면에서 비롯됐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은 12·3 계엄 선포로부터 122일, 국회의 탄핵소추로부터는 111일 만이었다. 누구도 예외 없는,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판결이 있었다.
당시 문형재 헌법재판관은 판결문에서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해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적었다. 재판관들은 한 국가의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정치인들의 관용과 자제, 대화와 타협, 사회공동체 통합을 간절히 당부했지만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후보 중 이런 정치적 품격을 갖춘 후보가 과연 있을까.
이대로면 대선을 치르고 다음 대통령이 나온들 바뀌는 것이 있을까 . 또다시 이념과잉과 반목이 반복되지 않을까.
대선 본투표가 이제 하루 앞이다.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대선을 치르는 아픈 역사를 두 번이나 반복한 만큼 정치적 계산과 무리수보다는 생산적인 논의와 미래 설계, 통합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단 하루라도 우리가 가진 이 한 표에 희망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