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호의 세계경제] 미국의 ‘합종’, 중국의 ‘연횡’

입력 2021-01-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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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요즘이다. 최근 미중 간 전략적 경쟁과 세계 주요국의 행태를 연구할수록 약 2300년 전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와 이렇게 유사할 수 있을까 감탄이 나올 정도다.

중국의 전국시대를 묘사하는 표현 중 합종연횡(合縱連橫)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말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뭉치고 흩어진다는 뜻으로 한 단어처럼 종종 사용된다. 면밀히 말하면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은 다르다. 합종책은 연(燕)나라 재상 소진(蘇秦)이 주장한 것으로, 서쪽의 강국 진(秦)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남북 종(縱)으로 위치한 연(燕)·제(齊)·조(趙)·위(魏)·한(韓)·초(楚)의 여섯 나라가 동맹을 맺는 정책을 말한다. 연횡책은 진(秦)나라 재상 장의(張儀)가 주장한 것으로, 강국 진나라가 이들 여섯 나라와 동서 횡(橫)으로 각각 동맹을 맺어 전국을 다스리는 전략이다.

이를 최근 미중 간 경쟁 구도에 대입해 보자. 트럼프 행정부는 주로 일방적 정책을 활용했지만, 대중(對中) 압박을 위해 사후에 동맹국들의 동참을 종용하고 압박했다는 점에서 합종책을 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을 타파하기 위해 중국은 주요국들과 양자 간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연횡책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합의된 유럽연합(EU)-중국 포괄적 투자협정 체결이 대표적 예다.

다만 내용 면에서 과거와 크게 다른 한 가지가 눈에 띈다. 중국 전국시대의 합종책은 당시 최강국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펼쳐졌던 반면, 현재 미중 간 경쟁 시대의 합종책은 패권국 미국이 아닌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과거든 현재든 합종연횡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은 누군가가 주는 위협감에 근거한 것일 게다. 중국 전국시대에는 진나라의 강력한 힘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각국의 합종연횡이 벌어졌다면, 현재 중국이 각국에 주는 위협감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빠른 부상과 더불어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캠페인 연설 등에서 “향후 미중 관계를 포함하여 ‘가치’를 미국 외교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강조해왔다. ‘가치의 중시’가 ‘동맹의 활용’과 함께 바이든 행정부 대외전략의 핵심 요소라는 점에서 바이든 집권 후 동맹국을 활용한 미국의 합종책은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이고 미중 간 대립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이든 취임 이후 미중 간 대립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 대선 직후인 작년 11월 16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언급한 새로운 행정부의 통상 관련 3원칙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국내 투자를 통한 미국 제조업의 부흥, 둘째는 노동 및 환경정책을 중시하는 통상교섭, 셋째는 제재 관세 등 징벌적 수단의 비활용이다. 이를 바탕으로 바이든의 대중 통상정책을 전망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 제조업의 부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급망 재편과 첨단기술 분야 육성에서는 중국과 지속적으로 대립할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내 제조’, ‘미국산 구매’, ‘미국 내 혁신’ 정책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국가안보를 확보하고 기술력에서 미국의 비교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과의 기술 탈동조화(tech-decoupling) 정책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노동 및 환경정책을 중시한다는 점은 ‘가치’ 중시와 일맥상통한다. ‘인권’이라는 가치 측면에서는 홍콩, 신장위구르, 티베트의 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간 대립이 더욱 격화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환경’이나 ‘보건’과 같은 가치에 있어서는 트럼프 정부와 다르게 중국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국이 파리기후협약 및 세계보건기구(WHO)에 재가입할 것으로 예측한다.

셋째, 제재 관세와 같은 징벌적 수단을 채택하지 않겠다는 점 역시 일방주의보다는 다자주의를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의 면모를 보여준다. 당장은 아니지만 단계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추가 관세가 폐지될 가능성이 있는 한편, 동맹국과의 다자간 협력을 통해 비용과 책임을 나누면서 대중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과의 연대를 강조해온 만큼, 대중 압박 정책을 취하기 전에 동맹국들과 사전 조율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시기에는 예측불가능성을 이유로 뭉개는 식의 전략적 모호성 유지가 가능했을 수 있었지만, 바이든 시대에는 사안마다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고 나름의 정당한 논리와 근거를 끊임없이 확보하여 미중 양국을 설득해야 되는 상당히 난처한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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