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고통의 숨결

입력 2020-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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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경제부장

올해 초 독감을 심하게 앓았다. 기침을 할 때마다 목과 가슴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다. 기침 때문에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야 했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마스크를 써야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마스크는 낯선 물건이었다. 감기 때문에 마스크를 쓴 것인데도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유행하던 정체불명의 폐렴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심상치 않게 퍼지던 그 폐렴은 ‘우한 폐렴’, ‘우한 바이러스’라 불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Covid-19)’이라는 정식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비말’을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때부터 전 세계에서 마스크 사재기와 품귀가 시작됐다. 작년 말, 아니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마스크가 이처럼 귀한 물건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처럼 마스크의 시작은 ‘고통의 숨결’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기원전 6세기 고대 페르시아인의 무덤 문에서 입 위에 천을 두른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벽화가 발견됐다. 당시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인간의 숨결이 불결하다고 여겨 종교의식 중에는 얼굴을 천으로 가렸다고 한다. 그게 인류 역사상 첫 마스크였다.

중국에서는 13세기 원나라 때 비단과 황금 실로 짠 스카프가 오늘날 마스크와 유사한 최초의 아이템이었다. 이탈리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 따르면 신하들은 황제가 식사하는 동안 입과 코를 스카프로 가렸다. 그들의 입김이 황제가 음식의 냄새와 맛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마스크의 출현 계기였다. 16세기 프랑스 의사 샤를 드 롬은 새 부리 모양의 마스크를 발명했다. 이 마스크는 부리 쪽에 말린 꽃과 허브 등을 넣어 질병의 주요 감염원인 악취를 걸러낼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챙이 넓은 모자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 장갑, 장화, 지팡이까지 갖추면 완벽한 방호복이 됐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마스크는 더 진화했다. 1827년 스코틀랜드 과학자 로버트 브라운은 마스크가 먼지에 유효하다는 걸 입증한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이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이후 1848년 미국인 루이스 해슬리는 광부들을 위해 만든 마스크를 최초의 ‘보호용 마스크’로 특허를 냈는데, 이는 인류의 마스크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861년 프랑스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공기 중에 세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많은 사람이 마스크에 더 관심을 갖게 했다. 그로부터 38년 뒤인 1899년 거즈 6겹을 덧대어 만든 마스크가 나왔고, 여기에 끈을 달아 귀에 걸 수 있게 하면서 현대적인 마스크가 탄생했다.

이처럼 마스크는 권력자를 위한 것에서 점차 서민을 위한 것이 됐다. 백성의 안위가 곧 권력자 자신의 안녕과 직결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코로나19 국면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만 해도 소득주도 성장과 부동산 정책의 실패,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조국 패밀리 스캔들 등의 여파로 궁지에 몰리는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모든 걸 덮었다. 의료진의 희생으로 ‘K방역’이 주목을 받으면서 모든 게 정권의 공으로 돌아갔고, 어이없게도 여당은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반면 이웃 나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코로나19의 초기 방역에 실패한 데다 건강 문제까지 겹치면서 결국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치명성을 줄곧 무시하다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을 미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경증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중증이 되면 선거 유세는 물론 향후 통치 능력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재선은커녕 현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위기 속의 백성은 마초적인 리더를 원하는 게 아니다. 고통의 숨결에 공감하되, 불결한 숨결은 미리 차단할 줄 아는 능력자. 마스크만 썼어도 가능한 것이었다. sue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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