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21세기에 이념 대결이라니

입력 2020-08-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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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경제부장

오래 전 일본에서 공부할 때다. 한중일 학생들이 섞인 수업에서 동북아시아 정세를 주제로 토론을 하던 중 한 남학생이 중국에 대해 ‘공산주의 국가’란 표현을 썼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한 중국인 여학생이 “우리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다”라며 울먹이다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그럼에도 남학생은 “공산당 1당 독재 체제인데,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면 뭐냐”며 여학생과 설전을 벌였다. 여학생의 울음은 계속됐고, 결국 교수님의 중재로 토론은 중단됐다.

당시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시장경제로 전환한 지 약 2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며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국민만 잘 살게 하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중국식 자본주의가 맞아떨어져 중국 경제는 고속 성장 궤도에 올랐고, 중국을 다녀오는 사람마다 도시 풍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상황에서 남학생이 중국을 ‘공산주의 국가’라고 한 건 사실 중국인의 ‘공산주의 콤플렉스’를 건드린 것이었다. 무엇보다, 1989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 항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세계가 다 아는데, 여전히 중국을 공산주의 1당 독재 국가로 치부하는 외국인의 시선이 불편했던 것 같다. 그 여학생은.

요즘 미국과 중국의 모습이 딱 이렇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게 확실해 보인다. 중국이 불편해하는 ‘공산주의 콤플렉스’를 미국이 살살 긁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3일 ‘중국 공산당과 자유 세계의 미래’를 주제로 연설하면서 “시진핑 ‘총서기’는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신봉자”라며 “우리는 양국 간의 근본적 이데올로기 차이를 이제는 무시할 수 없다”며 중국 공산주의로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역대 정권이 “일정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을 지원하고, 나아가 중국 민주화를 촉진하는 ‘관여 정책’은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더 나아가 폼페이오는 “자유 세계가 공산주의인 중국을 바꾸지 않으면, 중국이 우리를 바꿀 것”이라고도 했다. 즉, 이대로라면 중국 공산주의가 세계를 삼켜 버린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에서 주목할 건 ‘프레지던트(President, 주석)’로 불러온 시 주석의 호칭을 ‘총서기(General Secretary)’로 바꾼 것이다. 공산당이라는 일개 당 대표에 불과한 인물이 중국 전체를 통치하는 데 대한 일종의 깎아내리기다.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통령이 아님을 상기시킴으로써 중국인들로 하여금 공산당 1당 독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미국은 중국과 무역·기술·자본 등 물리적 전쟁을 벌였는데, 이제는 전술을 이데올로기 쪽으로 돌려 중국을 국제 사회에서 이념적으로 고립시키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의지가 엿보인다.

미국은 스파이 활동과 지식재산권 절도의 거점이라는 이유로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했고, 중국은 그 보복으로 쓰촨성 청두의 미국 총영사관을 폐쇄했다. 최근 수개월 간 양국은 비자 제한과 외교관 여행에 대한 새로운 제한 도입, 특파원 추방 등 상호 작용을 위한 외교 인프라를 크게 훼손했다. 그 결정판이 이번 공관 폐쇄다.

이는 현재 트럼프 정권 내 대중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를 바이러스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우한 바이러스’라며 계속 중국을 자극하고, 폼페이오 장관은 우방국들을 돌며 반중 동맹 전선 구축을 촉구하고 있다.

세계 최강국이란 나라 미국이 진영 논리를 앞세워 국제 사회에서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난감한 건 동맹 혹은 우방이라고 자타 공인해온 나라들이다.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 존재감이 너무 커서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인데 양자 택일을 강요당한다면 대체 어느 쪽에 서야 할까. 21세기 강대국들의 이념 대결이라니. 진짜 웃을 일 없는 요즘, 당신들 때문에 웃는다. 어이가 없어서.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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