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현의 쩐] 착함을 강요받는 금융사들

입력 2020-03-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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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 차장

제가 할게요./ 저한테 주세요./ 제가 다 할게요.

웹툰 ‘며느라기’의 주인공 민사린이 시댁에서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어른들에게 예쁨받고 싶어서 ‘좋다’, ‘싫다’도 내색하지 않고 겉으로 웃으며 홀로 삭인다. 이 작품은 ‘착함’을 강요당하는 며느리들의 공감대를 자극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시대 며느리처럼 사회가 정의한 ‘착함’을 강요받는 곳이 또 있다. 바로 금융사들이다. 이들은 엄연한 민간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위기가 생길 때마다 구원투수로 동원된다. 의도는 순수하지만, 과정은 반강제적이다.

최근 정부가 금융시장 변동성을 잡기 위해 마련한 채권ㆍ증권시장 안정펀드가 대표적이다. 20조 원 규모로 조성되는 채안펀드는 80%인 16조 원을 민간 금융회사 84곳이 분담한다. 구체적으로는 은행권이 9조4000억 원을 떠안고, 나머지 6조6000억 원은 보험과 증권사가 나눈다. 10조7000억 원 규모의 증안펀드도 75%인 8조 원을 5대 금융지주와 각 업권의 선도금융사가 분담한다. 문제는 이로 인해 금융사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채안펀드는 위험가중치(대출이나 투자한 돈이 떼이거나, 손실이 날 가능성에 가중치를 부여한 것) 100%라서 큰 상관없지만, 증안펀드는 300%나 된다. 금융사가 1조 원을 출자하면, 위험가중자산이 3조 원으로 불어난다는 얘기다.

강요된 착함 때문에 속(건전성)은 썩어 들어간다. 금융당국이 기업 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낮춰주는 ‘바젤Ⅲ’를 1년 반 앞당겨 시행하기로 했지만, 이는 기준만 바꾼 것뿐이다. 증자 등이 뒤따르지 않는 한 속은 그대로다.

개인사업자(소호) 대출 역시 마찬가지다. 다음 달 1일부터 소상공인들은 시중은행서 최대 3000만 원까지 연 1.5%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시중금리 차이를 정부가 80% 지원하는 이차보전 대출이다. 나머지 20%는 은행이 자체 부담한다.

이 안에도 가시가 있다. 바로 연체율이다. 올 들어 4대 주요 은행의 소호 대출 연체율은 최대 0.03% 올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점휴업 가게가 많아져, ‘빚 못 갚는 사장님’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새 예대율 시행에 맞춰 소호 대출을 잔뜩 늘린 상황에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한계 기업들이 줄도산하면 금융사 부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사들의 착한 임대료 캠페인까지 뒷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 모 은행은 이 캠페인에 동참했다가 곤혹스런 상황을 겪었다. 일각서 ‘순이익의 0.003%밖에 안 되는 돈을 쓰면서, 뭘 그렇게까지 홍보하느냐’는 지적을 쏟아냈다. ‘호의의 정의를 누가 정하느냐’는 반론이 생기면서 잠잠해지긴 했지만, 그 힐난들은 ‘착함’을 강요받는 금융사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선의로 기부했다가 ‘백시언(100만 원 기부한 이시언)’이란 오명을 얻은 배우 이시언처럼 말이다.

사회 혹은 정부가 바라는 금융사의 역할은 일반 기업과 다르다. 우리 경제 혈류(돈맥)인 만큼 ‘슈퍼맨’이 돼야 한다고 부추긴다. 하지만 타인이 만들어 준 선의는 강요일 뿐이다. 중국의 유명한 상담심리 전문가인 무옌거(慕顔歌)는 자신의 저서에서 ‘사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경계선이 명확한 가시 돋친 선량함을 지녀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의 시선이 바뀌기 이전에 이제는 금융사 스스로도 민간기업의 자세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sun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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