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창단 필수에 꽃은 못 가져가요" 결혼 인구 주는데…갑질 중인 예식장

입력 2020-01-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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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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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 찍을 돈만 있으면 결혼 다 할 수 있어."

자식 농사가 끝난 어르신들은 결혼을 머뭇거리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의지라는 거죠. 하지만 혼기가 닥친 청년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취업하더라도 감당하기 버거운 집값과 불확실한 미래, 결혼식에 써야 할 돈 걱정에 결혼을 망설입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gbn@)
(김다애 디자이너 mngbn@)

이 때문에 혼인 건수는 점점 줄고 있습니다.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나타내는 조혼인율은 2011년 6.6건을 기점으로 꾸준히 하락해 2018년에는 5.0건을 기록했습니다. 주 혼인연령의 인구가 감소한 것도 원인이지만, 20·30세대 실업률 증가에 따른 경제적 부담, 주거비 부담 탓이 큽니다.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결혼을 결심한 예비부부는 조금 뒤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예식장 지출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듀오웨드가 발간한 '2019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 준비 품목별 지출 비용은 신혼집(1억7053만 원)에 이어 예식장(1345만 원)이 차지했습니다. 청첩장 찍을 돈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는 말은 이제 곰팡내 나는 옛말인 것이죠.

◇사회자, 중창단, 생화…"모두 다 해야 해요?"

문제는 일부 예식장들이 비용을 부풀리기 위해 '갑질'도 서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식장을 이용하려면 자신들이 지정한 사회자나 중창단을 필수로 이용해야 하고, 생화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돈'으로 연결돼 예식장의 매출로 잡힙니다. 그만큼 예비부부의 부담은 커져만 갑니다.

▲결혼식 계약서에 '필수항목'으로 지정된 상품이 있다. 이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면 필수항목에 동의해야 한다.  (출처=독자 제공)
▲결혼식 계약서에 '필수항목'으로 지정된 상품이 있다. 이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면 필수항목에 동의해야 한다. (출처=독자 제공)

위 사진은 이투데이가 입수한 한 예비부부와 예식장의 계약서입니다. 중창단과 사회자 비용으로 내야 하는 금액은 110만 원. 이는 결혼식을 잘 치르기 위해서가 아닌, 예식장을 사용하기 위해 내야 하는 필수 금액 중 하나입니다.

결혼식장을 꾸미는 생화 역시 예비부부를 위해서가 아닌 예식장 매출이 우선됩니다. 식장을 꾸미는 생화 비용은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200만 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구입한 것인데도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한 번 꾸며진 생화로 4~5건의 결혼식을 치르는 것은 일부 예식장의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모두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예식장 관계자는 "결혼식 간격이 짧아서 매번 새로 꾸미기 어려워서 (결혼식장 이용자가) 꽃을 가져가는 것은 안 된다"라는 궁색한 답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예식장을 옮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갑질'을 일삼는 예식장은 관련 내용을 처음부터 상세히 알려주지 않습니다. 예비부부가 식장을 둘러보고 원하는 날짜를 잡아 계약서를 작성하는 시점이 되어서야 이런 내용을 하나둘 알려주기 시작합니다. 이미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예비부부로서는 '좋은 게 좋다'라는 마음으로 계약하게 되는 것이지요.

◇황금시간대 결혼하고 싶다면…"300명 보장하세요"

관행처럼 행해지는 '보증 인원'도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보증 인원은 결혼식 당일, 몇 명이 올 것이라고 가정하고 그에 상응한 식대를 내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그 보증 인원을 예식장이 설정해 실제 하객 수와 차이가 납니다. 가령, 예비부부는 하객 수를 150명가량으로 예상하지만, 예식장은 최소 보증 인원을 200명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200명을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180명만 오게 되더라도 200인분 식대를 다 내야 합니다.

다음 달 결혼식을 치르는 임지은(30ㆍ가명) 씨는 "정오나 오후 1시처럼 소위 '황금시간'으로 불리는 때는 300명을 보증 인원으로 해야 한다고 하더라"면서 "결국 보증 인원이 부담스러워 결혼식을 1시간 앞당겼다"라고 불만스러워 했습니다. 임 씨 결혼식의 보증 인원은 250명. 결혼식 날 이보다 적게 오더라도 250명분의 식대를 내야 합니다.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보증 인원은 임 씨만 겪는 일이 아닙니다. 2018년 이 내용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오기도 했을 만큼, 예비부부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입니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예식장 갑질 횡포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라는 글을 보면 글쓴이는 보증 인원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보증 인원은 사회자나 중창단 끼워팔기와 달리 널리 퍼진 현상이라 대책이 시급합니다.

◇예비부부들 "표준계약서 도입해야"

예식장은 수익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항변합니다. 보통 예식장은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ㆍ드레스ㆍ메이크업)'를 도맡는 업체를 선정해 함께 식을 진행하고 수익을 분배하는데, 비용을 높여야 예식장 수익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업체 역시 '성대한 결혼식'이라는 명목으로 필수 항목을 만들고, 자신들의 직원을 사회와 축가에 투입합니다. 예식장과 결혼업체가 '윈윈'하는 것입니다.

예비부부들은 통일된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일정이나 상황을 고려해 여러 예식장을 둘러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공통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달 식을 치르는 최대호(30) 씨는 "가격이나 구성면에서 기본 옵션이 있어야 '예식장 복불복'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예식장을 생화로 꾸밀지 조화로 꾸밀지, 사회자는 지인으로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등 다양한 선택지가 제공되도록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한 번뿐인 결혼식이 예식장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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