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업계, M&A 격랑에 빠지나

입력 2019-11-03 11:17 수정 2019-11-0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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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미국 시장 축소판…"당시 과정 비슷하게 재현될 것"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잇단 악재로 휘청이고 있다. 설상가상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최근 일본 불매운동 여파로 실적에 큰 타격을 입고 있는 LCC들이 미국 보잉사의 항공기 737NG(넥스트 제너레이션) 결함 사태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동체 균열이 추가로 발견돼 운항이 중단될 경우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의 LCC 역사를 보면 조만간 한국에도 인수합병(M&A)을 통한 구조조정 열풍이 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78년, 미국 항공업계에 대변혁이 일었다. ‘규제완화법’이 통과되면서 오랫동안 항공산업을 옥죄고 있던 규제는 모조리 없어지고, 항공사 설립은 물론 운임 결정까지 모두 시장에 맡기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경쟁시대가 본격화되면서 항공사들은 우후죽순 생겨났으며, 1980년대에만 무려 100여 개가 늘어났다. 과다경쟁이 불가피했던 1990년대 들어서는 결국 ‘규모의 경제’에서 살아남지 못한 항공사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100곳에 가까운 항공사들이 파산했으며, 이 과정에서 항공사 간 M&A가 본격화됐다.

당시 상황은 미국의 축소판인 우리 항공시장의 가까운 미래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미국 국적의 항공사는 대형항공사(FSC), 소형항공사, 지역항공사, 저비용항공사(LCC)로 구분되며 총 70개에 달한다.

반면 미국 면적의 100분의 1에 불과한 우리나라 항공사 수는 8개, 첫 운항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 LCC까지 더하면 11개에 이른다. LCC만 비교해보면, 미국(9)과 한국(9)의 숫자가 같아지는 셈이다.

땅덩이는 좁고 항공사 수는 많다 보니 국내 항공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이를 테면 인천~괌 노선의 경우 국내 대부분의 항공사가 이 노선에 비행기를 띄우고 있으며 그 외 부산, 무안 등 지방발 노선까지 더하면 초과열 경쟁 상황이다.

여기에 ‘한일 관계 악화’라는 악재가 더해져 일본 노선 비중이 평균 30%에 달하는 LCC들은 줄줄이 적자다. 설상가상으로 결함 발견에 따른 무더기 운항 중단이라는 ‘보잉 리스크’까지 불거져 항공업계는 그야말로 때아닌 한파를 견뎌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계기로 국내 항공업계, 특히 LCC를 중심으로 한 시장 재편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1990년대 과다경쟁이 극심했던 미국에서는 20세기 최대 항공사이자 미국의 상징이었던 팬암항공이 1991년 파산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역사는 길지만 오랜 적자를 견디지 못한 트랜스월드항공(TWA)이 2001년 아메리칸 항공에 매각됐다.

또 2008년에는 노스웨스트항공이 델타항공에 흡수됐으며, 2010년 콘티넨털항공은 유나이티드항공에 인수됐다. TWA를 품은 아메리칸항공은 2013년 US에어웨이스까지 인수하며 몸집을 더 키웠다. 그야말로 거대 항공사가 거대 항공사를 품으며 세계 최대규모 항공사가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항공시장은 빅3(유나이티드ㆍ델타ㆍ아메리칸) 중심으로 재편됐다. 미국 내 LCC 시장만 보면 40여 개에 달하던 항공사 수는 9개로 감소했다.

나라가 빼곡하게 모여 국가 경계가 모호한 유럽의 항공시장도 변화무쌍하다. 미국이 본격적인 시장경쟁에 돌입하자, 가격 경쟁에서 밀린 유럽 역시 1980년대 후반 들어 규제를 완화시키는 등 항공 자유화 바람이 전 세계에 확산됐다.

이 기간 유럽에서도 항공사가 수시로 생겨나고, 그만큼 빈번히 파산했다. 유럽 내 항공사 간 다양한 M&A도 이뤄졌다. 2004년 항공업계에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1919년 설립된 세계 최초 항공사이자 네덜란드의 자존심이었던 KML이 에어프랑스에 매각됐다.

두 회사는 에어프랑스KLM로 사명을 바꾼 뒤, 각자 경영을 유지하되 중복 노선 조정 등 경영 효율화 및 비용절감 정책을 수립해 합병 후 첫해 수익이 50%가량 상승하며 유럽 항공시장 점유율 1위(26%)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 2014년에는 왕족이 설립한 중동 3사 중 하나인 아랍에미리트(UAE) 국영 에티하드 항공이 적자에 시달리던 유럽(이탈리아) 항공사 알리탈리아 지분 49%를 인수했다. 하지만 알리탈리아 항공은 여전히 회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특히 경쟁이 심화된 유럽 LCC시장의 변동이 심상치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공급 과잉에 따른 수익성 악화다. 유럽 LCC 시장의 좌석 수가 1년 만에 10% 이상 늘어나면서 항공권 가격을 끌어내렸지만 항공유, 인건비, 항공기 임대료 등 비용은 오히려 늘어난 탓이다.

결국 독일의 ‘게르마니아’ㆍ‘아주르에어’, 스위스의 ‘스카이워크’, 리투아니아의 ‘스몰플래닛항공’ 등 유럽 LCC들이 운항을 중단했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10여 년간 6개까지 늘어난 LCC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지난해 상당수 LCC들의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였다. 여기에 ‘보이콧 재팬’ 여파가 수익성 악화를 부채질했으며, LCC뿐 아니라 FSC인 아시아나항공도 매물시장에 나와 있는 상태다.

특히 일본 수요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에는 혁신이 부재한 LCC들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항공시장 재편의 시작, 즉 본격적 M&A가 시작될 것”이라며 “미국의 과정을 우리도 가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특히 일본 노선 수요 감소가 장기화될 경우 내년부터 정말 (경영이) 어려운 LCC들이 나올 것이고 소멸 또는 M&A 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사우스웨스트, 이지젯, 라이언에어 등 세계적 LCC들이 감행한 가격 파괴 등과 같은 혁신 없이 단순히 비행기를 띄워서는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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