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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투자하라고?”, 포용의 프레임에 기업 등골 휜다

입력 2019-09-24 17:57

김문호 산업부 부장

16세기 에스파냐. 식민지 플랑드르(네덜란드, 벨기에 지역)의 저항에 부딪힌다. 네덜란드 지역에서 흔히 ‘80년 전쟁’이라 불리는 독립운동이 일어난 것. 종교적 이유도 있었지만, 세금 문제도 컸다. 이베리아 반도는 물론 이탈리아 반도 절반을 차지하는 나폴리 왕국,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조까지 손에 넣은 펠리페 2세는 거대 제국을 운영할 통치자금 부족에 항상 시달렸다. 오죽하면 그의 통치 시절 파산 선고를 4번이나 했겠는가. 특히 네덜란드에 파견된 군사령관은 상품거래세와 재산세를 추가로 부과했다. 돈에 민감한 상인들이 경제권을 쥔 네덜란드의 7개 주는 격렬하게 저항한다.

남의 나라 얘기만도 아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세상은 ‘상전벽해’의 시기였다. 하지만 반도의 조선은 60년간 지속된 세도정치로 삼정이 문란해지며 바람 앞의 등불 신세나 다름없었다. 사농공상의 신분제와 양반 관료의 특권, 착취적 지방행정과 조세제도는 나라를 병들게 했다. 망국의 위기에 선 조선은 결국 일본에 무릎을 꿇는 치욕을 맞봐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막론하고 국가 실패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세금’이다.

우리 속담을 빌려 보자.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배가 아픈 것은 못 참는다’란 말이 있다. 합리적인 조세정책을 펴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2년 차까지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율’을 앞세워 지지율 45% 안팎을 꾸준히 유지했다. 하지만 집권 3년 차인 2015년 초반에 40%대가 무너졌다. ‘정윤회 문건 파동’과 연말정산 환급금 감액 후폭풍으로 지지율은 34%까지 밀렸다. 2013년 세법개정 당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근로자의 세부담이 늘어난 탓에 연말정산이 ‘13월의 세금폭탄’으로 바뀌면서 넥타이부대를 중심으로 여론이 폭발했다. 이듬해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빼앗겼고 이는 탄핵 사태를 유발하는 단초가 됐다.

소득주도 성장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도 어쩐지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득주도 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엇박자다. 특히 세제가 시장에서는 경기 활성화에 역행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0번째로 높고, 세율 개편은 올해 신고분부터 적용된다)로 올려놓고,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금 세액공제 등 자잘하고 실효성 낮은 대책만 내놓고 있다.

주요국들이 감세와 규제 완화로 기업을 불러들이고 있는데, 한국은 법인세율을 높이고 갖가지 규제로 일자리를 해외로 몰아내고 있는 셈이다. 기업 활력을 높이고 신산업을 육성할 규제 혁신과 과감한 감세 정책이 절실하다

여기에다 반강제적 납부가 관행화하고 있는 ‘준조세’ 문제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상대적으로 동원하기 쉬운 대기업들을 동원해 자금을 마련하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갹출 공식’이 반복되고 있다. 2018년 기준 기업들의 준조세 부담은 20조 원이 넘는다.

기업이 떠안는 부담은 돈뿐만이 아니다. ‘일자리 만들어 내라’, ‘투자하라’ 압박에 사실상 정부나 정치권에 곳간 열쇠를 맡긴 지 오래다. 그런데도 총수들이 매년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가고, 툭하면 검찰의 소환에 끌려나가는 모순에 재계는 “못 해 먹겠다. 대체 한국 땅에서 기업을 왜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뒷말로 하소연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을 예로 보자. “사건의 ‘본류’인 분식회계는 밝히지 못한 채 ‘별건’인 증거인멸 혐의로만 변죽을 올린 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사법 당국은 여전히 이재용 부회장에게 올가미를 씌우려 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낸 조세공과금은 약 17조8000억 원, 이 중 납부한 돈이 86%나 된다.

소득주도 성장, 포용적 성장. 듣기 좋은 말들이다. 힘겨운 이들에겐 실로 달착지근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어떻게’다. 세금을 내본 사람, 힘들게 일해 기업을 일구고 봉급을 줘본 이들은 안다. 세금과 준조세가 얼마나 아까운지. 번 돈을 자꾸 내놓으라고 하면 누가 벌고 싶을지 생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법인세율을 OECD 평균으로 낮추면 40만1000개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한국경제연구원)이 있다. 다급해진 정부도 기업투자를 끌어내겠다며 최근 한시적으로 감세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기업 투자 촉진안을 보면 과연 정부가 경제 활성화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정부는 ‘3종 세트’라고 이름 붙인 투자 인센티브 방안을 제시했지만, 기업 투자를 끌어내기에는 턱없이 미흡해 보인다.

OECD 평균보다 4%포인트나 높은 법인세율을 꼭 깎아 달라는 게 아니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 다른 경쟁국과 거꾸로 가는 반기업 정책이 오히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적어도 경제를 생각한다면 기업 활동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할 일이 아닐까. 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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