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간다] 작가로 변신한 노인들…"부모님 자서전 쓰면서 삶을 되돌아봐요"

입력 2019-06-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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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앞에 둔 사람들이 대학생처럼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때론 더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홍인석 기자 mystic@)
▲노트북을 앞에 둔 사람들이 대학생처럼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때론 더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홍인석 기자 mystic@)

28일 오전 서울 은평구의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의 한 강의실.

중년과 노년에 들어선 23명이 각자의 노트북을 두드렸다. 다들 대학생들처럼 강연자의 말을 꼼꼼하게 받아 적었다. 강연자가 질문을 던지면 곧장 대답이 나왔다. 농담에는 큰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들은 새내기 대학생처럼 강의를 들으며 ‘자서전’을 쓰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강의의 취지는 부모님의 자서전을 쓰는 것이지만 남편, 오빠, 본인의 자서전을 쓰려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부모님 자서전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가 두 번째다. 작년에는 인터넷으로 1000명의 원고를 공모받아 1000권의 자서전을 만들었다. 조회 수만 28만 건을 넘겼다.

올해는 특강을 듣고 자서전을 만드는 형식으로 진행 절차를 바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총 4번의 특강을 듣고 자서전을 완성한다. 수강생 모두에게 자서전을 발간해준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달하면서 세대 간의 소통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다. '낀 세대'인 그들이 자서전으로 세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자서전은 손책자 크기로 발간된다. 페이지는 100페이 정도다. 사진도 중간중간 섞여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자서전은 손책자 크기로 발간된다. 페이지는 100페이 정도다. 사진도 중간중간 섞여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강연자인 박범준 꿈틀 편집장은 “모든 삶은 기록할 가치가 있다”라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보통 자신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올 만한 것인지 의문을 갖지만,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재미와 교훈이 있다"라고 말했다. 수강생 모두가 자서전을 쓸 수 있고,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용기'를 가지라고도 했다.

수강생들이 자서전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다. 뒤늦게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그 이야기를 듣고 남기고 싶은 사람, 자신의 부모님을 기록해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수강생 정용자(58) 씨는 "아이들이 늘 나를 엄마로만 보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의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엄마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고 생각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책으로 만들어 선물해주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한 수강생은 "아버지가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옛말) 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흐릿하다"라면서 "기억을 정리해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욕심에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서전의 독자를 '아이들'로 설정했다.

▲한 노인이 '자서전을 쓰려는 이유'에 대해 적고 있다. 수업 시간 내내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홍인석 기자 mystic@)
▲한 노인이 '자서전을 쓰려는 이유'에 대해 적고 있다. 수업 시간 내내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홍인석 기자 mystic@)

'부모님 자서전 쓰기'는 단순히 과거의 행적을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다. 어르신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해소하는 일이다. 옛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누구 하나 잘 들어주지 않아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부모님들. 나이가 든 자녀들은 뒤늦게 이런 부모님을 이해하고,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정선희(58) 씨는 "어머님이 나이를 들수록 옛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이 자녀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 "어머님의 삶을 재조명해 자서전으로 쓰고 싶다"라고 각오를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바쁘고 힘들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부모님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게 됐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눈물을 닦으시는 걸 봤다"라고 말했다. 이어 "매주 어린 시절, 청년 시절, 결혼 이야기들을 꾸준히 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게 없어 '부모님 자서전 쓰기'를 계기로 아버지가 지나온 삶을 정리해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다"라는 뜻을 내비쳤다.

'부모님 자서전 쓰기'는 부모ㆍ자식을 연결해주는 도구적 역할도 한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가치관을 가지면서 상충하는 부모와 자식이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자서전을 선물했다는 박범준 편집장은 "아버지가 평소 조언과 훈수를 많이 두는데 선물을 받고는 '고맙다'라고만 말씀하셨다"라면서 "이 작업은 부모님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며 프로젝트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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