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대화방] 정준영‧승리는 서고 유인석은 피한 '포토라인'…인권과 알권리 사이

입력 2019-03-21 18:09 수정 2019-03-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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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은 일종의 취재 경계선이다. 피의자는 노란색 삼각형 안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뒤, 검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투데이DB)
▲포토라인은 일종의 취재 경계선이다. 피의자는 노란색 삼각형 안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뒤, 검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투데이DB)

정준영과 승리는 섰고, 유인석 유리홀딩스 대표는 지나친 곳이 있다. 바로 ‘포토라인’ 삼각형이다. 이들은 일명 ‘버닝썬 게이트’, ‘승리 게이트’라 불리는 초대형 비리 사건 주인공으로 지목됐다. 세 명 모두 뇌물 공여 혐의, 성 접대 혐의, 성관계 불법 동영상 유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와중에 논란이 된 것이 포토라인 출석 여부다. 이달 14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정준영과 승리, 유 대표를 각각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승리와 정준영은 포토라인에 서서 죄송하다며 허리를 숙였다. 반면, 경찰 유착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는 유 대표는 포토라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취재진의 눈을 피해 기습 출석을 감행했고, 국민들은 그의 검찰 포토라인 패싱에 분노했다.

포토라인은 일종의 취재 경계선으로, 취재 대상자가 촬영을 위해 머무는 범위를 말한다. 공인 또는 유명인사에 대한 취재가 과열 경쟁 양상으로 번져 몸싸움이 발생할 경우, 이에 따른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장치다. 즉, 공정한 취재와 상호 편의를 위해 기자들끼리 접근하지 않기로 합의한 사진 촬영지역 혹은 취재지역이다.

지금 같은 포토라인 제도가 시작된 것은 2006년 8월 한국사진기자협회·방송카메라기자협회·인터넷기자협회 등 3개 단체가 관련 시행 준칙을 제정하면서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많이 발생했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자 2010년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 공보 준칙 훈령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특정 피의자 촬영 경쟁에 무리가 예상될 경우, 포토라인이 설치된다.

뉴스의 메인 장면으로 잡히는 포토라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일각에서는 아직 유죄가 입증되지 않은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서는 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적법절차의 원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서 피의자 포토라인 취재는 불가피한 측면이라는 의견도 팽팽히 맞선다.

유 대표가 불러온 포토라인 패싱 논란. 이를 두고 뉴스랩부 나경연 기자와 사진부 고이란 기자가 포토라인 필요성에 대한 논의부터 포토라인 취재 현장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생생한 이야기를 나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포토라인에 서지 않아, 사법농단에 대한 뉘우침을 보이지 않는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투데이DB)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포토라인에 서지 않아, 사법농단에 대한 뉘우침을 보이지 않는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투데이DB)

◇포토라인 서면 모두 유죄?…피의자‧참고인 신분 명시

나경연 기자(이하 나):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 국민들은 바로 인지하게 되요. 저기 선 사람은 유죄라는 걸. 뉴스에서 포토라인에 선 정치인이나 기업 총수를 보는 순간 ‘저 사람 또 뭐 저질렀구나’라는 생각을 바로 갖죠. 피고인 또는 피의자는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에요.

고이란 기자(이하 고): 글쎄요. 국민들이 포토라인에선 사람을 모두 유죄라고 느끼진 않을 거예요. 왜냐면 사진 기사를 올릴 때 반드시 피의자 또는 참고인 신분이라는 것을 명시해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진 기사를 봐 볼까요? 제 사진 기사를 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라고 캡션을 달았어요. 피의자 신분이라는 것을 꼭 적어요. 다른 매체 기자도 마찬가지고요.

나: 저는 피의자 혹은 참고인 신분이라고 명시하는 것이 신문 독자들 혹은 시청자들의 인식이나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글자보다는 순간의 이미지에 많이 현혹되잖아요. 특정 피의자가 포토라인 노란 선에 서 있는 뉴스 장면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각인되죠. 그럼 그 사람은 곧 국민적 범죄자가 되는 것 아닐까요.

고: 그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포토라인에 서는 사람들을 보면, 완벽히 결백한 사람은 거의 없어요. 어느 정도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혐의가 있기 때문에 그 정도 낙인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대기업 총수가 성추행 혐의를 받았어요. 그러면 그 기업 계열사는 연달아 손해를 입어요. 설사, 총수가 결백하다고 하더라도 직원들이 입은 피해는 어떻게 보상받죠? 그 정도 사회적 낙인은 총수가 감당해야 할 몫인 거죠.

나: 물론 공인 즉, 고위공직자이거나 국회의원 혹은 자산이 1조 원이 넘는 기업 총수는 그들의 범죄 행위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워낙 크니까, 포토라인에 서서 입장을 밝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일반인이나 연예인의 경우에는 그들의 범죄가 끼치는 해가 공인보다 덜 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들의 찍히지 않을 권리, 초상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고: 맞는 말이에요. 그래서 피의자는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거부할 수 있어요. 공인은 물론이고 연예인, 일반인까지도 포토라인에 서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힐 수 있는 것이지요. 최순실 같은 경우도 공개 소환을 한 번 하고, 그다음에는 포토라인에 세우지 말아 달라는 의사를 밝혀서, 그 이후엔 포토라인에서 볼 수 없었죠. 자신의 억울함을 언론이라는 창구를 통해서 밝히고자 하는 피의자에게는 포토라인 취재가 '득'이 되는 것이고, 아예 언론에 언급되기를 원하지 않는 피의자에게는 포토라인이 '독'이 되는 것이죠.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어요.

▲승리와 정준영은 이달 14일 포토라인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두 사람 모두 잘못을 인정하며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투데이DB)
▲승리와 정준영은 이달 14일 포토라인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두 사람 모두 잘못을 인정하며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투데이DB)

◇실제 현장에서 '포토라인' 역할은?

나: 실제로 포토라인이 있으면 질서가 잘 지켜지는 편인가요? 최근 정준영이 공항에 입국했을 때 사진을 보니까 기자들이 정준영의 마스크를 벗기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모자를 뺏어가는 등 포토라인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 같아서요. 그래서 포토라인의 실질적 역할이 궁금해요.

고: 포토라인은 현장에서 굉장히 잘 지켜지고 있어요. 정준영 같은 경우는 저도 궁금해서 공항에 나가 있던 이투데이 관계 매체인 비즈엔터의 고아라 기자 말을 들어 봤는데요. 고 기자의 말에 따르면, 정준영이 미리 공항에서 정해 놓은 입국 출입구 바로 앞에 잡아둔 포토라인에 서지 않았어요. 또, 취재진 질문에 응하지 않은 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 버렸어요. 간단히 말하면 포토라인 밖에서 일어난 일이고, 결국 질서가 보장되지 않는 범위에서 무질서한 취재 경쟁이 일어나 버린 것이죠.

나: 만약 정준영이 포토라인에서 기자들 질문에 응하고 포토라인을 따라 빠져나갔다면, 그런 무질서는 없었겠네요. 방송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검찰청에서는 대부분 피의자가 포토라인을 준수하는 편이죠?

고: 그럼요. 포토라인이 설치되면 사진과 영상기자는 약속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아요.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리를 이탈해 취재하면, 다른 사람들의 앵글에 걸려 피해를 주기 때문이죠. 보통은 각 매체에서 선착순으로 포토라인에 자리를 잡아요. 자리 선점은 사진기자가 현장에 계속 있어야 하고, 사다리나 의자만 세워놓고 현장에 없는 경우는 인정하지 않아요.

나: 선착순으로 하면 키가 작은 기자들은 뒤에 설 경우, 취재가 힘들 것 같아요. 혹시 사다리가 없는 기자들이나 신체적 조건이 불리한 기자들을 배려하기도 하나요?

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있는 인물이 검찰에 출석할 때는 혼잡함을 피하기 위해서 선착순 자리 선점 대신 자리 추첨을 진행해요. 사진기자협회에서 미리 공지를 보내는 방식인데요, 명함을 가져와서 한곳에 모아 뽑힌 사람이 먼저 자리를 정해요. 첫 줄은 엉덩이로 자리에 앉고, 둘째 줄은 낮은 의자에 앉아요. 셋째 줄은 영상카메라가 서고, 마지막 줄은 사다리를 설치해 취재해요. 박근혜, 이명박, 양승태 등이 출석할 때는 검찰 출입 매체들을 대상으로 각 매체에서 1명만 출입신청을 받아 취재를 허가했죠. 대부분 이런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 당시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헤어롤을 풀지 않은채 출근하는 사진이 찍혀 이슈가 됐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 당시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헤어롤을 풀지 않은채 출근하는 사진이 찍혀 이슈가 됐다. (뉴시스)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헤어롤' 에피소드

나: 선배가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있던 에피소드도 궁금해요. 한 가지 들려주세요.

고: 음,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헤어롤’ 사진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잖아요. 사진 기자들은 보통 포토라인 양쪽으로 갈라져서 사진을 찍는데, 이 전 재판관의 헤어롤이 한쪽에서는 찍히고 다른 쪽에서는 찍히지 않았어요. 그날 사진 기자들은 '선착순'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말이죠. 이렇게 오른쪽, 왼쪽 선택의 한 끗 차이로 물을 먹기도 해요.

나: 질서를 지켜서 자리를 나누다 보니 그런 해프닝도 있네요. 프랑스는 포토라인이 없고, 차를 타고 검찰에 들어가는 것을 찍는 것만 가능하다고 해요. 독일은 아예 피의자 소환 날도 안 알려주고, 공보관을 통해서만 취재가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우리나라도 포토라인을 없애면 어떻게 될까요?

고: 외국은 포토라인은 없지만, 파파라치가 있어서 언제 어디서든 촬영할 가능성이 크다고 알고 있어요. 만약 포토라인이 없어진다면, 그때야말로 취재 경쟁으로 이어져 집 앞부터 검찰, 법원 입구 입구에 취재진이 진을 치고 코앞까지 카메라를 들이밀겠죠? 그럼 안전에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 뭐, 포토라인이든 파파라치든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아요. 너무 허무한 결론인가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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