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현금 범람…대기업 "예금받아라" 은행 "못받겠다"

입력 2014-07-2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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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자금을 은행에 맡기려는 대기업과 돈이 너무 많아 받지 않으려는 은행이 맞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기업예금은 지난달 말 53조2천억원과 38조3천억원으로 2년전보다 5조3천억원(11.1%)과 4조3천억원(12.6%)씩 늘었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은 7조2천억원(9.0%)이 증가해 86조8천억원, 신한은행은 6조4천억원(8.8%)이 늘어나 79조3천억원의 기업예금을 보유하게 됐다.

국민은행(73조원)과 기업은행(45조1천억원)을 합친 6개 주요 은행의 기업예금 잔액은 375조7천억원에 이른다.

은행들이 받는 기업예금은 기업 입장에선 여유자금이다. 대규모 결제나 투자를 앞두고 짧은 기간 돈을 맡겨두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 잉여 현금흐름이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국내 100대 대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이 120조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10%에 해당한다.

우리은행은 최근 한 지방은행의 기업예금 유치 요청을 거절했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금을 연 2.5%의 우대금리로 받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손태승 우리은행 자금담당 상무는 "꼭 받아야 하는 거래관계 기업이 아니면 역마진 자금이 되기 때문에 실무선에서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은행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손 상무는 전했다. 서로 자금이 넘쳐나다보니 예금을 경쟁 은행에 넘기려 하고, 이를 거절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는 "기업 예금을 단기로 받아 콜론이나 RP(환매조건부채권)로 돌리면 역마진이 난다"며 "장기로 받아도 기업이 투자를 안 해선지 대출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기업예금 유치를 놓고 은행 내부에서 영업 부서와 자금 부서가 충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업을 '고객'으로 모셔야 하는 영업 부서가 기업예금을 유치하면, 이 돈을 굴려야 하는 자금 부서가 퇴짜를 놓는 식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어렵사리 금리 네고(협상)를 거쳐 예금을 끌어왔는데 자금 부서에서 난색을 보여 금액을 줄이거나 아예 백지화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규모가 큰 기업예금은 금리 0.1%포인트에 오가는 돈이 수억원이다. 대기업은 여유자금을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에 분산 예치하면서 금리 네고를 받는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005380] 등 한꺼번에 수천억원의 자금을 굴리는 대기업의 자금 담당 부서장은 은행들에 '슈퍼 갑'이다.

최근 이들 대기업 담당으로 발령난 한 은행 지점장은 "대기업 자금부장과 점심약속은 2주 뒤로 간신히 잡았고, 골프 약속은 아직도 날짜를 못 받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그러나 돈을 쓰기 싫어서 남아도는 게 아니라 쓸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전략 담당 임원은 "신규 투자 관련 기획안이 수도 없이 쌓여 있지만, 각종 규제와 노사 문제 등으로 검토만 하고 보류된 상태"라고 말했다.

돈이 기업의 여러 예금계좌에 묶이다 보니 한국은행이 아무리 기준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도 시중에 실제로 도는 돈은 줄어든다.

한은의 통계를 바탕으로 계산하는 통화승수(계절조정)는 지난 5월 19.4배로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1년 12월 이후 가장 낮았다.

통화승수는 중앙은행이 푼 돈이 시중에 얼마나 잘 도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통화승수가 낮을수록 경제의 활력이 둔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강병구 인하대학교 교수(경제학)는 "시장에서 임금 근로자에 더 배분해야 할 몫이 배분되지 않은 탓에 가계의 소득은 늘지 않고 기업예금만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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