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오토 인사이드] 똑같으면 안 탄다…세그먼트 전쟁

입력 2019-08-2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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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오픈카·스포츠 세단… 색다른 유혹

“이것이 기아차의 진짜 시작입니다.” 1991년 도쿄 모터쇼. 김선홍 기아자동차(옛 기아산업) 회장이 눈시울을 붉히며 한 말이다. 당시 기아차는 독자 개발한 자동차 3개 모델(스포티지·세피아·세피아 컨버터블)을 모터쇼에서 공개했다. 그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스포티지였다. 이 모델은 세계 최초의 도시형 콤팩트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이다. 스포티지는 승용차의 역할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세그먼트를 정의하는 차량이었다.

스포티지는 기아차의 위상을 높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름도 낯선 한국 자동차업체가 만든 차를 보려고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의 연구원들이 달려들 정도로 전 세계 자동차 산업에 적잖은 충격과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또 덩치가 작은 자동차 회사가 살아남는 길을 제시했다.

◇도심형 소형 SUV의 선구자는 기아차 1세대 스포티지 = 작은 시작은 기아산업(기아차 모태)을 눈여겨본 미국의 포드였다. 장기적으로 소형 SUV 시대가 올 것을 예상한 포드는 일본 마쓰다의 생산 기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던 기아차에 소형 SUV 공동 개발 및 생산을 제안했다. 포드가 제안한 새 SUV 개발 프로젝트는 ‘UW-52’였다. 기아차가 소형 SUV를 생산해 미국으로 보내면 포드가 자사의 앰블럼을 달아 북미에 팔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포드는 협상 막판에 와서 당시 기아차가 추진 중이던 화성공장의 지분을 요구하고 나섰다. 화들짝 놀란 당시 기아차 김선홍 회장은 포드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해 버렸다.

포드와의 제휴에는 끝내 무산됐지만 기아차는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독자 모델을 개발했고, 1세대 스포티지를 선보였다.

1992년, 기아차는 도쿄모터쇼 한복판에 소형 SUV 콘셉트를 앞세워 스포티지를 깜짝 공개했다. 일본 메이커는 놀랐고, 포드 역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스포티지를 보고 화들짝 놀란 일본 토요타와 혼다는 서둘러 RAV-4와 CR-V 등 도심형 소형 SUV 개발에 나섰다. 별도의 플랫폼 대신 토요타 코롤라와 혼다 시빅을 밑그림으로 작은 SUV 개발에 나섰다.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소형 SUV가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정작 새 콘셉트를 세상에 내놓은 기아산업은 안타깝게도 이를 생산할 공장이 없었다. 결국 토요타와 혼다가 양산차를 먼저 내놓으며 기아산업을 추월해 버렸다.

◇틈새 전략 앞세워 차종 다양화 = 이처럼 체급이 작은 자동차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틈새 전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들이 만들지 않는 시장에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게 관건. 시장에 먼저 뛰어들어 수요를 선점하는 게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그만큼 시장 변화와 트렌드 분석이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고급차 메이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로 나뉘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3사는 세단 중심의 전통적인 라인업 사이사이에 틈새 모델을 꽂아 넣고 있다.

예컨대 독일 아우디는 △A4 △A6 △A8을 중심으로 세단 라인업을 두고, 그 사이사이에 쿠페와 해치백, 컨버터블 등 가지치기 모델을 투입한다. △A3 △A5 △A7 등이 이런 종류다.

국내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폴랫폼 공유를 시작하면서 세그먼트 나누기가 시작됐다.

2000년대 초, 현대차의 EF쏘나타 플랫폼을 바탕으로 기아차는 중형 세단 옵티마를 내놨다. 같은 플랫폼을 바탕으로 엔진과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 대부분도 공유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두 차종이 경쟁하면서 차별화가 필요했다. 후속 모델인 NF쏘나타부터 본격적인 차별화가 시작됐는데 현대차는 고급화를, 기아차는 스포티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NF쏘나타는 배기량을 2.0과 2.4를 내놓았지만, 동급인 기아차 로체는 2.0리터에 배기량을 묶어놓는 것으로 등급을 갈랐다.

이후 2000년대 말부터는 플랫폼 공유를 지속하되 디자인과 주행 특성 등을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세그먼트를 나누고 있다.

고급차 분야에서도 두 회사는 서로의 틈새를 파고든다.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G70 △G80 △G90으로 라인업을 짜면, 기아차는 별도의 브랜드 없이 그 사이사이에 틈새 모델을 투입한다.

실제로 기아차는 스팅어의 배기량과 차 가격, 옵션, 타깃 수요층 등을 제네시스 △G70 △G80 사이에 포진시켰다. 고급차 K9이 제네시스 G80보다 비싸되, G90보다 낮은 가격을 유지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세상에 없는 콘셉트가 시장 선점에 유리해 = 플랫폼 공유화가 더욱 발달하고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 차종 다양화는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에서는 준중형차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양한 소형 SUV가 봇물을 터트리고 있다.

틈새시장 파고들기 기술이 경지에 다다른 쌍용차가 가장 먼저 이런 니치 시장을 공략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방형 적재함을 단 스포츠 모델, 뒤이어 소형 SUV 티볼리였다.

소형 SUV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자 현대차는 코나와 베뉴, 기아차는 셀토스와 스토닉 등 걸출한 경쟁모델을 내놓고 있다.

전에 없는 차를 내놓으며 새로운 시장을 겨냥하는 게 최근 자동차 업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기아산업 1세대 스포티지. 포드의 소형SUV 프로젝트를 기아산업이 가로채 먼저 콘셉트카로 등장한 차다. (사진제공 기아차)
▲기아산업 1세대 스포티지. 포드의 소형SUV 프로젝트를 기아산업이 가로채 먼저 콘셉트카로 등장한 차다. (사진제공 기아차)
▲이제 지붕이 열리는 컨버터블도 스포츠 쿠페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럽에선 소형 SUV 들이 잇따라 컨버터블을 내놓으며 틈새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사진은 폭스바겐 티-록 컨버터블의 모습 (사진제공=뉴스프레스UK)
▲이제 지붕이 열리는 컨버터블도 스포츠 쿠페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럽에선 소형 SUV 들이 잇따라 컨버터블을 내놓으며 틈새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사진은 폭스바겐 티-록 컨버터블의 모습 (사진제공=뉴스프레스UK)
▲미니(MINI) 크로스컨트리는 소형차 미니의 첫 번째 영토확장이다. BMW가 소형SUV인 X1을 바탕으로 개발했다. (사진제공 BMW미디어)
▲미니(MINI) 크로스컨트리는 소형차 미니의 첫 번째 영토확장이다. BMW가 소형SUV인 X1을 바탕으로 개발했다. (사진제공 BMW미디어)
▲볼보는 SUV와 세단의 특징을 결합하는게 아닌, 아에 승용 세단의 차 높이를 껑충 끌어올려 새 모델을 만들었다. S60 크로스컨트리의 모습.
▲볼보는 SUV와 세단의 특징을 결합하는게 아닌, 아에 승용 세단의 차 높이를 껑충 끌어올려 새 모델을 만들었다. S60 크로스컨트리의 모습.
▲유럽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소형 SUV 베스트셀러 시트로엥 C3. (사진제공 뉴스프레스)
▲유럽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소형 SUV 베스트셀러 시트로엥 C3. (사진제공 뉴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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