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재도전의 실패는 국가의 실패

입력 2019-08-2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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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세요! 2018년 4월부터 ‘금융공공기관’의 연대 보증이 폐지되었습니다.”, “연대보증 폐지 1년, 창업과 중소기업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 홍보 동영상에 나오는 글이다. 정말 그럴까. 안타깝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표이사가 연대보증인으로 금융기관에 날인을 하지 않아도 주식을 50% 이상 가지고 있는 대주주이면 은행법에 의거해 대주주 대표이사는 바로 채무불이행자로 등재되어 전 금융권에 통보된다.

여러 가지 사유로 운영 중이던 기업이 갑자기 위기에 직면하면, 기업이 위기를 타개할 시간을 기다려주는 대신 기다렸다는 듯이 그 위기 사항을 전 금융권이 공유하면서 기업은 삽시간에 무너지고, 기업과 대표이사의 자산은 제값 받고 매매할 시간을 벌지 못한 채 경매로 넘어가게 된다. 대표는 경매 대금을 한 푼도 손에 쥐지 못하지만 양도세는 무조건 내야 한다. 양도세를 내지 못하면 바로 또 채무불이행자가 되고 국세가 체납되면 개인회생과 파산 면책도 어려운 가운데 중가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형사사건도 소멸시효가 있는데, 기업가들의 신용은 소멸시효도 없고 사면도 없다. 세금 체납 문제로 회생과 파산도 안 되는 사이 다른 채권은 헐값에 팔리고 팔려, 단 한 번 신용 불량이 되었음에도 채권을 사들인 대부업체들이 또다시 채무불이행 등재 신청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직장인들은 갑자기 회사에서 나가면 실업급여라도 있어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갈 기반이 되지만 마지막까지 기업을 살려보고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기업가들은 아무런 생계 안전망 없이 회사가 무너지는 순간 바로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투자 대신 대출 위주로 형성된 한국 창업 생태계에서 한 번 신용이 문제 되면 다시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렵다. 2010년부터 시행된 재도전정책으로 재도전을 권장하고 있지만 은행에 미상환 채무가 있는 경우 10년이 지나도 다시 그 은행을 이용할 수 없다. 신·기보 등 재보증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일선에선 절대 불가능한 얘기다. 금융 블랙리스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금융권에 기생하는 채권 계열사들의 밥그릇 지키기가 얼마나 공고한지 아는가.

재도전 사업가의 미래가 아무리 희망차도 재창업 자금 받는 거 외에는 바로 자금 절벽인데 그마저도 기업 데스밸리(죽음의 계곡) 구간인 3년 후부터 바로 상환해야 하는 구조다.

경제 구조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을 살리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중소기업을 살리는 길은, 실패는 혁신으로 가는 과정임을 실체적으로 인식하고 도전, 성공, 실패, 학습에 이르는 전 주기적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에 있다.

올해에만 1조1180억 원의 정부 자금이 창업 지원에 쓰였지만 그 가시적 성과가 과연 얼마나 나타날지 의문스러운 가운데 가장 좋은 경제 대안인 재도전정책을 활성화하고 창업 안전망 등 재기 시스템을 갖추는 게 백 번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창업 선순환의 연결고리인 재도전 정책의 프로세스를 바꾸지 않고 창업하라고 독려한다면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라는 것과 똑같다. 매년 1조 원씩 쏟아 부어 봤자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는 것이다.

연대보증을 폐지해도 은행법이 가로막는 등 정부 부처별 창업 관련 법안들이 공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창업에 걸림돌이 되는 시스템이 뭐가 문제인지를 서로가 모르는 게 문제다. 개별적 규제 철폐 문제 제기보다, 창업의 전체 구조적 측면에서 중기부 외 금융위, 법무부, 기재부, 산업부, 지자체 등 창업과 관련된 모든 정부 부처가 서로 연계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제 대기업 위주, 엘리트 위주, 기득권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다. 처절하게 실패해보고 피눈물을 흘려본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경제는 희망이 보인다. 유럽 중소기업법 제2원칙은 ‘파산에 직면한 정직한 기업가의 보호 및 재기 지원’이다. 아무것도 못 하게 하면 아무것도 못 가져간다. 정직한 기업가, 신용은 한 번 잃었지만 신뢰는 잃지 않은 기업가를 선별, 끝까지 도전하게 해서 끝까지 회수하는 프로세스로 가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다시 환원하게 해야 한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볼 줄 모르고, 약자의 시스템에 무관심한 국가, 한번의 창업으로 한사람의 인생을 재기 불능으로 만드는 국가야말로 실패 국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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