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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카트] 불매운동의 칼끝이 향해야 할 곳은…

유통바이오부 차장

1990년대 초 이맘때쯤으로 기억한다. 낯선 할아버지 한 분이 외할머니와 함께 집을 찾았다. 외할머니는 큰외할아버지라고 소개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수년이 지났을 때 우리 가족을 찾아온 외할아버지 형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어를 쓰는 그였기에 조금은 거부감마저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삼 형제의 막내였다. 그날 찾아온 할아버지는 형제 중 둘째로 일제강점기 때 징용을 가서 광복 후 일본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는 간간이 한국어를 사용했지만 대부분 일본어로 대화를 이어갔고 일제강점기 때 소학교를 나온 외할머니가 통역을 맡았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외할머니가 전해주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살아온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광복 후 일본이 어수선한 틈을 타 그는 철저히 일본인으로 위장해 신분을 속이고 살았다고 했다. 한국말을 거의 잊은 것도 그 때문이란다. 모국어를 버린 그는 일본에서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했다고 한다.

모국어를 잃은 그였지만 고국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반세기가 지난 그날 그를 한국 땅으로 이끌었다.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이미 고인이 된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설움이 북받쳤는지, 그가 연신 팔뚝으로 눈가를 훔쳤던 것이 기억난다.

일본인 행세를 하며 살아온 것이 부끄럽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미안’과 ‘못해’ 등 자신이 아는 몇 개의 단어를 자주 반복하는 그에게서 좀 더 일찍 한국을 찾지 못한 것, 형제들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것, 또 한국을 잊고 한국어를 잊어버린 것을 자책하는 모습이 느껴져 안쓰러웠다.

지금 한국에서는 사상 초유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이다.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일본 정치인들의 조롱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 달 보름째 불매운동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응징하는 것에 반대하진 않는다. 그러나 칼끝이 향하고 있는 곳이 점차 흐려지는 건 문제다. 일본 정치권과 일본 기업, 특히 전범 기업을 향한 분노를 넘어 최근에는 일본인과 일본 기업 근로자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목도하게 된다.

안 사고, 안 먹고, 안 가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생존이 달린 문제는 다르다. 취업절벽인 요즘 일본 기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선 안 된다. 그들에게 사표를 던지라고 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

일본 기업이 투자한 회사에 다니는 지인 역시 이 같은 문제 때문에 괴로워했다. 10년 전부터 다니고 있는 회사에 지금도 다니고 있을 뿐인데 손가락질을 받는다며 이직을 고민한다는 그는 불매운동 장기화가 만들어낸 희생양이다.

25년 전 우리 가족을 찾아왔던 큰외할아버지에게 못했던 말을 그에게 대신한다. “당신 탓이 아니라고.”yhh1209@

<저작권자 ⓒ 이투데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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