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42. 몽블랑도 워터맨도 실수는 있었다

입력 2019-08-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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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연구소장

6월 23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자신의 최대 실수로 구글에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출시할 기회를 준 것을 꼽았다. 그는 “소프트웨어 세계, 특히 플랫폼 시장은 승자 독식의 시장. 따라서 최대의 실수는 그것이 무엇이든 내 잘못된 경영이 MS가 안드로이드가 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만년필 세계에서 빌 게이츠처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예를 찾을 수는 없지만,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주자인 워터맨, 셰퍼와 몽블랑 등에 실수가 있었다.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 실용적인 만년필 세계를 연 워터맨은 1910년대 후반까지 약 30년 동안 내놓는 것마다 승승장구, 적수가 없는 회사였다. 이미 1900년대 초반 자사의 펜촉, 지구의(地球儀) 모양의 상징, 만년필을 만드는 재질인 하드러버(hard rubber·경화고무) 공장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1920년대 들어서면서 30년이나 늦게 만년필 사업을 시작한 셰퍼의 공격적 경영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셰퍼는 1920년대 초 만년필 사용자의 평생 사용을 보증하는 평생보증 만년필과 플라스틱 재질의 만년필을 연달아 성공시켜 만년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는데, 그 성공만큼이나 피해를 입은 것은 워터맨이었다. 반면 워터맨만큼이나 오래된 회사인 파커는 이 평생보증과 플라스틱 재질에 재빨리 대응했지만 워터맨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플라스틱 재질이 많이 늦었다. 파커가 플라스틱 만년필이 나온 지 2년 만인 1926년 플라스틱 만년필을 출시했지만 워터맨은 5년이 지난 1929년에 플라스틱 만년필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1929년의 플라스틱 만년필은 상당히 늦은 것이었다. 당시 만년필 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던 독일의 몽블랑이 1928년에 플라스틱 만년필을 만들었고, 그보다 더 변방인 일본의 파이로트 역시 1927년에 플라스틱 만년필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워터맨은 하루라도 빨리 플라스틱 만년필을 내놓았어야 했다.

▲새로운 경향의 잉크 충전방식이 처음 시도된 1930년대 펠리칸 100.
▲새로운 경향의 잉크 충전방식이 처음 시도된 1930년대 펠리칸 100.
1930년대에는 워터맨의 발목을 잡았던 셰퍼 역시 실수를 범했다. 1929년 유선형과 1931년 투컬러(two color) 펜촉을 내놓는 등 셰퍼가 만년필 세계를 장악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파커가 새로운 경향의 잉크 충전 방식 ‘버큐메틱’을 내놓자 이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새로운 잉크충전 방식이란, 우리가 흔히 고무튜브라고 말하는 고무색(rubber sac)이 아닌 만년필 몸통에 잉크가 직접 충전되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느낌상 누구나 대세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셰퍼 역시 재빨리 동참했지만, 너무 서두른 나머지 문제 있는 방식을 가져다 쓰는 실수를 범했다. 이것은 1905년 영국에서 개발된 플런저(Plunger)라는 방식이었는데 고장이 잦았고 수리가 어려웠다. 결국 셰퍼는 이 실수로 인해 1930년대 후반 파커에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현대 최강자인 몽블랑 역시 이 새로운 경향의 잉크충전 방식의 원조인 피스톤 필러 때문에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이 방식을 처음으로 상용화한 것은 같은 독일의 펠리칸이었는데 이 특허권자가 몽블랑과 먼저 접촉했기 때문이다. 만약 몽블랑이 이 특허를 그때 사들였다면 현대 유일한 만년필 세계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펠리칸은 만년필 회사로 존재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이 회사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 회사, 나아가 국가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만년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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