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나무 그늘 아래에서 생각하는 고마운 분들

입력 2019-06-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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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

최근 몇 년간 식물원 일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이름에서도 이국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자주 방문하고 있습니다. 빙하와 만년설에 뒤덮인 높은 산들이 즐비한 속에 모래사막과 자갈사막, 대초원들이 펼쳐진 풍경은 실로 경외감이 느껴진다는 말 외에 적당한 표현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멀리 만년설이 쌓인 높은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봄날의 짙푸른 대초원의 풍경을 처음 맞이할 때는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는 5~6월에는 그 싱싱하던 녹색 대지가 온통 누런빛으로 힘을 잃은 모습에 또 한번 놀라게 됩니다. 눈 녹은 물이 흐르는 수로 주위를 제외하고는 그 넓은 대지가 온통 바짝 타들어가 녹색을 띤 풀 한 포기조차 찾기가 어려워집니다. 극심한 건조기후가 이 지역을 대표한다는 백과사전의 설명을 몸으로 이해하는 순간입니다. 이때부터는 기온도 30도를 훌쩍 넘기고 7~8월이 되면 숨쉬기도 어려운 40도조차 쉽게 넘기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여름은 사람도 바짝 말라가는 느낌이 듭니다.

사실 이렇게 온몸이 뜨겁게 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흔히 경험하는 일이긴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5~6월도 중앙아시아에서 경험하는 극심한 건조와 더위에 육박하는 기후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다행히 수많은 나무들과 숲들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래에만 들어가면 몸이 시원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여름에 나무 그늘이나 숲 속에 들어갔을 때 시원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뒤에는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식물이 땅에서 물을 뽑아 올려 수증기로 기화시켜 공기 중으로 내뿜는 ‘증산 작용’이 바로 그 비밀입니다. 이렇게 액체 상태의 물이 수증기로 기화될 때 엄청난 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주변 공기를 냉각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나무 주변 혹은 숲 속의 공기 중에 물 분자가 많아지는, 즉 습도가 높아지는 효과 때문에 건조를 완화시켜주어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식물이 증산 작용을 통해 공기 중으로 내보내는 물의 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식물은 뿌리로 흡수한 물의 최소한 95% 이상을 증산 작용을 통해 공기 중으로 내보냅니다. 예를 들어 다 자란 옥수수 한 그루는 하루에 15ℓ의 물을 증산을 통해 공기 중으로 내보내고, 성숙한 자작나무 한 그루는 하루에 750ℓ에서 3800ℓ까지도 물을 뿜어 올립니다. 또, 가로와 세로가 각각 3m인 잔디밭이 1년에 증산하는 물의 양은 50톤에 이릅니다. 이 양은 우리가 흔히 사서 마시는 500㎖ 들이 작은 생수병 10만 개 분량에 해당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전기모터나 엔진이 달린 분무기로 하루 종일 물을 뿜어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전기 모터나 엔진을 써서 이렇게 물을 뿜어내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소음도 꽤나 클 것입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식물들은 에너지도 쓰지 않고 아무 소음도 없이 조용히 이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사회에도 이 식물들처럼 묵묵히 일해주는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사는 복잡한 도시가 문제없이 편안하게 움직이도록 해주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사람들을 출퇴근시켜주는 버스 기사님들, 온갖 지저분한 것들을 남들이 보지 않는 시간에 치워주시는 환경미화원분들과 쓰레기 수거 종사자님들, 24시간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긴장하는 경찰관님들과 소방관님들, 이른 새벽 공원과 건물 주변 녹지에 물을 주고 식물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원예 및 조경 관리사분들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외에도 소리 없이 우리를 시원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식물 같은 분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여름철 중앙아시아의 풀들처럼 바짝 타들어가지 않도록 우리들 모두 좀 더 관심과 감사의 마음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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