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로마는 아직 불타지 않았다

입력 2019-05-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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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1년도 못 가 로마가 불타오를 것이다.”

1년 전 이탈리아에서 급진좌파인 오성운동과 극우정당인 (북부)동맹이 연립정부를 구성했을 때 나온 말이다. 당시 상당수의 국제정치경제 전문가들은 아주 이질적인 좌우파 포퓰리스트 정부가 구성되면서 유럽연합(EU)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고 1년도 못 가 조기 총선, 그리고 정치 불안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탈리아 연립정부는 건재하고 EU와의 충돌은 계속되지만 로마가 다시 불타진 않았다.

당시의 우려는 근거가 없는 게 아니었다. 지난해 5월 29일, 2년 만기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2.69%를 기록했다. 전날보다 무려 1.8%포인트 올랐고 2013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탈리아 정치발 경제위기를 직감한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자금을 인출하면서 국채 금리가 치솟았다. 어쨌든 반(反)유로 성향의 재무장관 지명자가 교체되고 연립정부가 구성되면서 국채 금리는 하락했고 자금시장도 다소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런 소강 상태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EU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와 이탈리아 포퓰리스트 정부는 다시 격돌했다. 반유로 성향의 오성운동과 반이슬람과 반이민을 앞세운 북부동맹의 공통점은 확대 재정정책이다. 이들은 2019년도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2.4%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확대하는 예산안을 편성했다. 집행위원회는 과도한 재정 적자가 유로존의 규정을 위반하게 될 것이라며 적자 축소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집행위원회가 공식 징계 절차에 들어가 이탈리아 정부를 계속 강하게 압박하자 포퓰리스트 정부는 적자 규모를 2.04%로 줄였다. 이 충돌의 와중에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다시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단일 화폐 유로존 가입국은 정부 재정 적자가 GDP의 3%, 공공부문의 부채가 GDP의 60%를 넘어서는 안 된다. 이탈리아는 유로존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최저치를 기록 중이었고 공공부문 부채는 130%가 넘었다. 그런데 연립정부는 월 780유로의 기본소득을 비롯한 복지확대 정책을 도입했다.

당시 이탈리아발 유로존 위기의 재발 경고가 계속되는 가운데 나는 집행위원회가 2.04% 축소에 만족하지 않고 이탈리아를 더 압박할 것으로 보았다. 2010년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로존 경제위기가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등으로 확산하면서 EU 각 회원국에서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세력을 확대했다. EU와 포퓰리스트 정부가 예산안을 두고 벌인 첫 격돌에서 당연히 EU는 더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분석과 다르게 당시 EU 집행위원회가 2.04%에서 이탈리아 정부와 타협한 것은 각국의 포퓰리스트들에게 더 이상의 공격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EU가 강하게 나올수록 포퓰리스트 정당들은 국익을 내세우며 반유럽 기반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EU 집행위의 경제 전망을 보면 올해 이탈리아의 재정 적자는 2.4%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올 경제성장률이 0.2%로 전망되면서 세수 감소 등으로 적자폭이 확대된다. 이탈리아가 확대 재정을 계속하면 2년 내에 재정 적자가 GDP의 3%를 넘게 된다. 그리고 복지 확대는 쉽지만 복지 축소는 매우 어렵다. 그 어느 정치인이라도 표를 잃는 복지를 줄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유로존과의 격돌 과정에서 소수 연정 파트너였던 마테오 살비니 북부동맹 당수이자 내무장관의 입지는 크게 올랐다. 1년 전에는 오성운동의 지지율이 30%를 넘었는데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북부동맹이 30% 정도의 지지를 얻어 오성운동을 앞질렀다. 살비니는 민족국가 중심의 유럽 통합을 주창하며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포퓰리스트 정당의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26일 종결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그가 EU 각 회원국의 극우파 정당을 중심으로 결성을 주도한 유럽인민및국가연합이 5년 전에 비해 30여석을 더 얻어 의회 내 네 번째 세력으로 부상했다.

1년 전 소수 연정 파트너에서 이제 유럽의회 선거 승리로 제1당의 세력을 확인한 살비니는 머지않아 조기 총선을 치러 우파 중심의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럴수록 살비니가 이끌 이탈리아 정부와 EU와의 격돌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탈리아 경제는 유로존에서 3위로 19개 단일 화폐 회원국의 16.4%를 차지한다. 유로존의 또 다른 경제위기가 로마에서 시작될 것이고, 이 경우 유로존은 최악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로마는 아직 불타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이탈리아 정치 상황의 전개에 따라 로마가 또 불붙는다면, 유로존으로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유로존 경제의 2%에 불과했던 그리스발 경제위기와 차원이 다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최악의 경우 수인 로마발 정치경제 위기에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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