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엄마·어머니 그리고 어머님

입력 2019-05-08 05:00 수정 2019-05-0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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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팀장

“기억 왔다 갔다 할 때마다/아들 오빠 아저씨 되어/말벗 해드리다가 콧등 뜨거워지는 오후//링거줄로 뜨개질을 하겠다고/떼쓰던 어머니, 누우신 뒤 처음으로 편안히 주무시네//정신 맑던 시절/한 번도 제대로 뻗어보지 못한 두 다리/가지런하게 펴고 무슨 꿈 꾸시는지…”

시인 고두현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발을 보고 쓴 ‘참 예쁜 발’이다. 시를 읽고 나니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청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피곤한데 뭐하러 와. 길도 엄청 막힐 텐데. 난 괜찮아…” 하신다. “괜찮다”던 시어머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들었다가 가슴을 치며 맥없이 떠나보냈기에 이젠 속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기운이 떨어질수록, 건강이 나빠질수록 자식 보고픈 마음은 커지는 법. 사무치게 후회할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으리라.

어버이날이다. “왕이든 농부든 자기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괴테의 말처럼 가족보다 소중한 건 없다. 오늘만큼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뒤로 미루고 온 가족이 단란하게 빙 둘러 앉아 밥을 먹고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정성스럽게 달아 드렸으면 한다. ‘어머니 은혜’ 노래를 부르면 더 좋겠다.

카네이션은 색깔에 따라 꽃말이 다르다. 붉은색은 사랑·존경, 분홍색은 열렬한 사랑, 흰색은 추모를 뜻한다. 그러니 살아 계신 부모에게는 붉은색을, 돌아가신 부모에게는 흰 카네이션을 선물하면 된다.

어버이날과 카네이션의 인연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1908년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래프턴의 한 교회에서 애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죽은 어머니를 추모하며 흰 카네이션 500송이를 교인들에게 나눠 준 것이 그 출발이다. 이후 1914년 윌슨 대통령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날’로 선포했다. 우리는 1958년에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했다가, 1973년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 어른, 노인들을 공경하자는 취지로 ‘어버이날’로 명칭을 바꿨다.

간혹 ‘말’의 쓰임을 몰라 살아 계신 부모를 ‘말’로 죽이는 이들이 있다. 존경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님’의 잘못된 사용 탓이다. 특히 갓 결혼해 새로운 가정을 꾸린 이들 중 “부모님을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니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말하는 이가 여럿이다. 정말 큰일 날 일이다.

결혼 여부, 나이와 상관없이 나를 낳아주신 부모는 아빠·아버지, 엄마·어머니라 불러야 바르다. 아버지, 어머니에 ‘-님’을 붙이는 순간, 돌아가신 분이 된다. 아버님, 어머님은 돌아가신 부모나 편지글에만 맞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 아주 드물게 살아 있는 아버지를 높인답시고 “선친께서…”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 또한 엄청난 말실수이다. ‘선친(先親)’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남에게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나를 낳아주신, 세상에 딱 한 분뿐인 내 부모이니 다른 수많은 남의 아버님, 어머님과 구분해 부를 만하다. ‘-님’이 없으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 거리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친부모가 아닌 혼인 등으로 인한 법률상의 부모는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는 것이 맞다. 며느리는 시부모를, 사위는 장인·장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 불러야 한다. 친(親)보다 예(禮)를 앞세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세상의 모든 것이다. “자식이 왼쪽 어깨에 아비를 업고, 오른쪽 어깨에 어미를 업고 수미산(須彌山)을 백천 번 돌고 돌아 살이 닳아 뼈가 드러나고, 골수가 드러나더라도 부모의 깊은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 부처의 말이다.

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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