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어디 갈래] "돈 가지고 지옥에 가라"…'사회운동가' 탈을 쓴 '예술가'

입력 2019-04-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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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덴마크 대표작가 아스거 욘 아시아 최초 소개

"그 돈 가지고 지옥에나 가라. 상금을 거절한다. 상을 달라고 한 적도 없다. 당신들의 어처구니없는 시합에 내가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길 바란다."

1963년 12월 뉴욕의 구겐하임 재단이 자신을 '구겐하임 국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는 소식을 듣자 덴마크 작가 아스거 욘(1914~1973)은 이 같은 내용의 전보를 써서 미술관에 보낸다. 이 일갈은 그의 예술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스거 욘은 엘리트주의 예술을 철저하게 거부했고, 대중이 예술 중심에 서야 한다고 믿었다.

▲아스거 욘의 초상.(1938)(사진제공=이하 국립현대미술관)
▲아스거 욘의 초상.(1938)(사진제공=이하 국립현대미술관)

예술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거장, 아스거 욘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가 12일 개막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덴마크 실케보르그 욘 미술관과 협력해 회화, 조각, 드로잉, 사진, 출판물, 도자, 직조, 아카이브 등 90여 점의 욘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유럽 중심 미술사에서 벗어난 대안적 미술사 쓰기를 제안하고, 동시에 끊임없는 예술적 실험과 정치 참여, 사회적 운동가로서 살아온 욘을 조명한다. 그동안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서술된 미술사는 욘의 회화적 표현에만 집중해 왔다.

욘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지만 1950~70년대 '코브라'(CoBrA),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al International) 등 사회참여적 예술운동을 주도했던 덴마크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 틀을 깨고 구조에 도전하고 = 전시는 '실험정신, 새로운 물질과 형태', '정치적 헌신, 구조에 대한 도전', '대안적 세계관, 북유럽 전통' 세 가지 얼개로 짜였다. 이날 찾은 전시장 안에는 임시 벽이 세워지지 않았다. 천으로 공간을 구분한 것은 모든 전시를 한눈에 봤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전략이다.

첫 번째 공간에는 1930∼1940년대 다양한 매체에 도전하면서 고전적인 미술 언어의 틀을 깬 초기 작업이 전시됐다. 욘이 작가로서의 경험을 쌓아가던 이 시기의 덴마크는 초현실주의와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호안 미로 등 유럽의 젊고 진보적인 예술가들에 주목하고, 스칸디나비아 민속예술, 국가적 전통이 혼합된 추상적 표현주의 예술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젊은 시절부터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욘은 예술도 공동체 경험으로 간주해 개인 창작품 역시 그 본질은 특정한 사회 환경과 연관돼 있다고 봤다.

▲무제(데콜라쥬), 1964, 상자에 부착된 찢어진 포스터, 64x491cm, 욘 미술관 소장.
▲무제(데콜라쥬), 1964, 상자에 부착된 찢어진 포스터, 64x491cm, 욘 미술관 소장.

욘은 예술은 하나로 정의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를 위해 피카소나 미로 등의 작품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며 '전환'을 시도했다. 이는 고전주의적 장면에 대한 도전이자 새로운 자신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초기 작업에서 찾아볼 수 있듯 욘은 피카소나 미로 등 다른 작가들의 표현 양식을 자신의 목적대로 전환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틀 깨기'는 이후 그의 작업 안에서 더 급진적이고 독창적으로 나타난다.

두 번째 주제는 '코브라'와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 등 욘의 사회적,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는 그룹 활동이다. 1948년 결성된 코브라는 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테르담의 앞글자에서 따온 명칭이다. 여기서 욘은 공동체 활동과 연대, 창의성에 바탕을 둔 대안적 문화를 실험하고자 했다. 9년 뒤 만들어진 SI는 예술의 상품화를 지양하고 소비 자본주의를 비판했으며 예술적 창의력을 일상에 접목하고자 했다.

그의 사회, 정치적 헌신은 작품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욘의 비판적 메시지는 미술 잡지 '지옥의 말', 코브라, 이미지주의 바우하우스 운동 그리고 SI 등 욘이 설립, 주도했던 예술그룹 활동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예술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루고자 노력했던 이 단체들 안에서 욘은 대중의 통념과 사회 구조에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북유럽 문화와 전통으로부터 대안적 이미지를 찾으려 한 욘의 연구를 살펴본다. 욘은 SI를 떠나 1961년 스칸디나비아 비교 반달리즘 연구소(SICV)를 설립했다. SICV는 스칸디나비아 중세 예술 연구를 통해 북유럽 문화가 예술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스칸디나비아 전통 연구에 중점을 둔 도서 시리즈 '북유럽 민속예술의 1만 년' 32권을 출판, 관리하며 '현대 사회에서 예술적 사색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려 했다.

▲무제(미완의 형태 파괴), 1962, 캔버스에 유채, 122x97cm, 욘 미술관 소장.
▲무제(미완의 형태 파괴), 1962, 캔버스에 유채, 122x97cm, 욘 미술관 소장.

당시 욘이 SICV를 통해 출판했던 책들은 대부분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스칸디나비아 예술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욘은 그동안 남유럽 전통이 북유럽 문화를 한정적이고 지역적인 민속예술로 평가절하 했다고 주장했다. 또 만년의 역사가 축적된 북유럽 문화는 기독교 성경을 기반으로 한 문자 중심의 남유럽 문화와 달리, 야만적이고 행동 지향적이며 이미지 중심으로 한 고유 문화라고 봤다. 또한 욘은 이러한 북유럽 전통 연구를 통해 기존의 지배적인 고전 문화를 해체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를 제안할 수 있다고 믿었다.

◇ 골대 3개 달린 축구장이 미술관에 들어섰다 = 지하 1층에 설치된 거대한 '축구장'인 '삼면축구'도 욘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이 경기장은 직사각형에 2개 골대를 갖춘 일반적인 축구장과는 다르게 골대가 3개 있는 정오각형 형태다.

관객참여형 작품인 '삼면축구' 경기장에서는 욘이 고안한 규칙에 따라 경기가 진행된다. 3개 팀이 동시에 경기를 진행하는데 승패를 가르는 것은 득점이 아닌 실점이다. 골 득실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일대일 경기와 다르다. 세 팀의 공격과 수비가 균형을 이뤄야 승리할 수 있다.

▲아스거 욘의 '삼면축구'.
▲아스거 욘의 '삼면축구'.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두 팀만 있다면 공격에 힘을 쏟겠지만, 팀이 3개가 되면서 공격이 아닌 방어적인 태세를 갖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욘이 냉전시대 미·소 양국의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예술을 통해 찾고자 한 대안적 세계관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야콥 테이 덴마크 실케보르그 요른 미술관 관장은 "유럽과 미술의 많은 예술가가 욘을 두고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했다"며 "이제 대중에게도 욘이 알려질 때가 왔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8일까지.

▲전시회 전경.
▲전시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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