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식의 시사 인문학] 경박한 평면적 사고- 김용옥의 경우

입력 2019-04-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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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칼럼니스트

인간의 삶은 사람과 사물들, 그리고 여러 사태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대상이나 사태에 부닥치면 실상을 파악하고 원인을 캐내려고 애쓴다.

대상을 파악하는 데는 흔히 이분법(二分法)이 동원된다. 대상을 상반되는 두 개의 구분지(區分肢)로 나누는 방법이다. 사람의 성별을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 것이 좋은 예다. 간단명료하면서도 쓸모 있는 방식이다. 세상에는 이런 이분법으로 명쾌하게 분별할 수 있는 일이 제법 있다.

문제는 이분법이 상당히 많은 것들에 대해 먹혀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령 어떤 사람에 대해 그를 천사(성자) 아니면 악마, 둘 중 하나일 거라고 말한다면 맞는 판단일 수 없다. ‘효자 아니면 불효자’ ‘천재 아니면 바보’라는 식의 이분법 역시 마찬가지다. 이 세상 사람은 성자나 악마, 효자나 불효자, 천재나 바보, 어느 한쪽에 속하기보다 각 구분의 중간 정도에 속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대다수가 양 극단의 중간에 속한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

도저히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을, 즉 중간치가 폭넓게 분포한다는 사실을 도외시하는 것이 지나친 단순화다. 마치 모든 색깔을 흑 아니면 백으로 나누는 식이다. 이런 지나친 단순화가 큰 오류를 낳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분법적 단순화는 특히 인물을 평가할 때 흔히 등장한다. 가령 정치 지도자를 무오류의 영도자와 잔인무도한 악한의 두 부류로 대별하는 것이다. 전자는 인성이 성현 수준이고 과오는 전무하며 공적은 차고 넘친다. 이와 반대로, 후자는 인성은 악마 수준이고 공적이 전무한데 과오는 차고 넘친다. 인류사에 이런 인물이 실재할 수 있을까?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毛澤東)을 평하면서 썼다는 ‘공칠과삼(功七過三)’이 훨씬 현실 세계에 존재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현실 속의 지도자는 공적과 과오가 섞여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높이 평가되는 인물은 과오에 비해 공적이 큰데, 그 반대의 인물은 공적에 비해 과오가 크다고 말하는 게 보다 사실적일 것이다. 그러니까 과오가 전부인 양 평가되는 통치자 역시 ‘과칠공삼(過七功三)’ 정도라고 보는 게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인간은 간단명료함을 좋아한다

간단명료함을 좇는 인간의 성향은 다양한 인간사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파악하려는 데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모든 일에는 예외 없이 원인이 있다. 사건에 따라 원인은 단순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종류(요소)가 많고 각 요소의 작용 정도 역시 매우 다양하다. 유리창이 돌에 맞아 깨지는 원인은 단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 사회의 사건들, 특히 국가적 사건의 원인은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엄밀히 열거한다면 그 변수는 무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많다. 가령 한 나라의 흥망의 원인을 어떻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분명한 한계가 있는데도 툭하면 단답형 대답이 동원되는 까닭은 우리가 간단명료한 대답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한 말로 ‘딱 부러진’ 한마디의 설명을 더 좋아한다. 심지어 설명은 그처럼 간단명료해야 한다는 통념까지 있다. 전문가의 복잡하고 자세한 설명보다 거칠게 단순화한 한 줄의 선전 선동 문구가 더 잘 먹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경향 때문이다.

“이승만은 괴뢰” 사실과 다른 주장

얼마 전에 김용옥 교수가 국영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한 발언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그의 발언 중 주목할 대목은 다음 세 가지다. 김일성과 이승만은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기 위해 데려온 자기들의 일종의 ‘괴뢰’라는 것,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것,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 신탁통치에 찬성했으면 분단도 없었을 거라는 것.

이제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 우선 ‘이승만은 괴뢰’라는 그의 첫째 발언부터. ‘괴뢰’는 ‘꼭두각시’, 즉 조종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인형을 가리키고, ‘남이 부추기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정의이다. ‘이승만은 괴뢰’라는 말은 이승만이 그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마치 인형처럼 미국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 주장은 무엇보다도 역사적 사실과 다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은 존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정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미군정이 남한 현지에서 좌우 합작하고 소련과의 협상을 통해 통일정부를 세우려 했는데, 이승만은 소련에 대한 미국의 유화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미국과 심한 갈등을 빚었다. 또한, 이승만은 6·25전쟁의 휴전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미국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공포로를 석방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국을 집요하게 압박하여 한·미 방위조약도 끌어냈다. 오죽했으면 미국이 그와 갈등을 겪으면서 ‘이승만 제거 작전(에버레디 플랜, Ever-Ready Plan)’까지 세웠겠는가. 지금 열거한 것들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엄연한 사실이다. 무슨 해괴한 역사 해석이나 허구적 이야기가 아니다.

‘이승만은 괴뢰’라는 김용옥의 주장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뿐더러 필자에겐 큰 충격을 선사했다.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 주목받는 김용옥이 한국 현대사에 대해 상식적 지식도 갖추지 못했음을 확인하는 순간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턱없는 지적 오만이자 착각

다음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주장도 살펴보자. 김용옥은 이승만을 눈곱만 한 공적도 없고 우리나라를 분단되게 만든 원흉일 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승만은 ‘공무과십(功無過十)’의 정치가다.

이런 평가는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기 쉽다. 이런 극단적 정치인은 실재하기 어렵다. 아무리 혹평하더라도 ‘과칠공삼’은 되지 않을까? 이승만이 괴뢰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면서 앞에서 제시한, 이승만이 한 여러 일들은 전혀 공적이 아니고 전부 과오라고 말해야 타당할까? 이승만을 아무리 과소평가하더라도 ‘국립묘지에서 파내 버려야 할’ 만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건 매우 부당해 보인다. 또한, 설령 이승만을 그처럼 부정적으로 보더라도 조선시대의 ‘부관참시(剖棺斬屍)’가 연상되는 원색적 표현을 동원한 김용옥의 지성은 참으로 저급하다고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국민이 일치단결해 신탁통치에 찬성했으면 분단도 없었을 거라는 그의 대담한(?) 추단(推斷) 역시 그가 역사를 지극히 평면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재확인하게 해주는 주장이어서 매우 실망스럽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역사의 향방은 특정 변수 하나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역사는 음악에 비유하면 대규모로 편성되는 합주이고 교향악이다. 그 방향을 어느 한 요소만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김용옥의 생각은 턱없는 지적 오만이자 착각일 뿐이다.

진정한 지성적 사고가 요구된다

이성적 사유, 지성적 성찰이란 지나친 단순화가 횡행하는 와중에서도 그런 흐름의 확산에 제동을 거는 일이다. 사실 파악이나 공과(功過)의 평가, 역사적 사건의 원인 규명 등은 치밀한 분석과 냉철한 성찰에서 나옴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용옥의 관점과 논법은 참된 지성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혹세무민(惑世誣民)에 가깝다. 이런 평가가 좀 가혹해 보이면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미혹하게 하여 속임”임을 상기해 보면 된다.

거친 이분법과 경박한 평면적 사고가 판을 치는 요즘이다. 하기야 지도적 지성인으로 알려진 철학자 김용옥의 사유 깊이가 이토록 저급한 터에 일반 시민을 향해 냉철하고 차분한 사고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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