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이사의 목소리와 책임

입력 2019-03-13 18:28 수정 2019-03-1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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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책임(Responsibility)은 응답(Response)할 수 있는 능력(Ability)이다. 응답은 듣는 능력을 전제로 한다. 듣지 못할 때 우리는 근본적으로 무책임하다.” ‘목소리와 책임’에 대한 한 철학자의 통찰이다.

인도의 활동가인 아룬다티 로이의 입장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목소리 없는 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고의로 침묵하거나, 듣지 않고 싶어해서 들리지 않게 된 자들이 있을 뿐이다.”

목소리와 책임은 지배구조 문제 중 이사의 역할에 화두를 던진다. 이사는 주주가 주주총회를 통해 선임하기에 주주의 목소리가 없더라도 법에서 보장된 이사 본연의 권한을 적극 활용해서 항상 ‘주주와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즉 이사에게는 회사의 업무 집행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다른 이사의 업무 집행을 ‘감독’할 권한이 있다. 이는 신중한 절차에 따라 ‘합리적인 의견’(주의 의무)을 제시하고, 충실한 검토를 통해 지배주주와 회사, 주주 간 발생할 수 있는 ‘이익 상충’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할 책임(충실 의무)을 전제로 한다.

이사의 본질로 전문성과 독립성을 핵심으로 거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국내 기업에서는 회사가 지배주주의 지배력 아래에 있어 사외이사의 역할이 축소되는 게 불가피한 현실이다.

상법은 자산 2조 원 이상의 상장회사에 3명 이상, 이사 총수의 과반수의 사외이사를 두고,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감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양적, 질적으로 투명한 이사회를 구성하고, 주주권익의 최종 수호자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이사회 운영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단, 법은 최소한의 형식적 요건일 뿐이란 점에 주의해야 한다. 사외이사가 지배주주나 회사와 연고가 깊거나 이해관계에 얽힌 경우, 활발한 의견 제시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외이사의 독립성은 선임뿐 아니라 운영 과정까지 실질적으로 확보돼야 한다. 2018년 기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의 분석을 통해 국내 대기업 집단의 독립성 사례를 살펴보자. C그룹의 경우 지배주주 친족 간 일감 몰아주기를 최우선으로 감독해야 할 내부거래위원회가 설치된 계열사가 하나도 없었다. H그룹은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했지만,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이 해당 위원장 역할도 담당해 실효성이 의문시되기도 했다. S그룹은 보수위원회에 대표이사가 포함된 곳이 있어 자신의 보수를 스스로 심의하는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현재 정기주총 시즌을 맞고 있는 올해 3월에도 ‘합법적인’ 독립성 이슈는 계속 제기되고 있다. J그룹에서는 자산재평가나 차입을 통해 자산 2조 원을 채워 상근감사 제도를 폐지하고 감사위원회로 변경하는 안건을 제출했다. 하필 상근감사를 파견하겠다는 주주제안을 받은 직후에 일어난 일이라 뒷맛이 개운치 않다.

G사는 2016년 3월까지 자사에서 근무했던 임직원을 사외이사 후보 안건에 올렸다. 은퇴 후 2년이 지났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최고 경영진에게 독립적인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어려울 테다. S전자는 재단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교의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올렸다. 그 재단은 기업총수의 영향력 하에 있어 독립성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선진국들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법 보다는 자율로, 회사 내부의 절차적 타당성과 공시 강화 등 투명성을 통해 개선하고 있다. 사외이사 선임 시 회사 외부인사로 후보 추천인단을 구성하고, 사외이사 선임 Process와 Pool, 평가방식을 규정해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사외이사의 전문성 또한 독립성 확보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미국, 캐나다 등 주요 기업들에 대해 모든 이사들의 경력을 12가지 항목으로 표로 나타내 평가하는 이유다. 해당 산업, 경영에 경험이 풍부하고 식견이 높다면, 기업 가치 침해 가능성이 명확해 보이는 안건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므로’ 이사 개인별 활동 내역과 평가를 공개하는 것도 사외이사 역할 증대의 좋은 방법이다. 회사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기관에 평가를 맡기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이사가 적극적으로 회사에 정보를 요청하고 주주와 소통하면서 본연의 목소리를 되찾을 때, 기업가치 증대라는 기대에 부응할(Response) 책임의 능력(Ability)도 담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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