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배드 딜’보단 ‘노 딜’이 낫다

입력 2019-03-04 02:13 수정 2019-03-0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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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산전수전 다 겪은 74세의 노장(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세계가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 성과에 목매고 있으니 핵 개발의 주요 거점인 영변 핵 시설만 폐기한다고 해도 미국이 완전한 대북 제재 해제 요구를 선뜻 받아들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더구나 회담 전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분위기를 띄운 탓에 젊은 김 위원장도 덩달아 고무돼 제 뜻대로 되어 가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올 1월 자신이 신년사를 발표했을 때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그가 신년사에서 “전제 조건과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의사가 있다”고 하자마자 남한에서는 마치 김정은이 남북관계 개선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마냥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 그가 “통일의 앞길을 가로막는 외부 세력의 간섭과 개입을 절대 허용치 않겠다”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 및 주한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등을 완전히 중지할 것을 요구했는데도 말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만 재개된다면 유엔 제재가 풀리지 않아도 귀중한 외화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그동안 비축한 외화로 근근이 버틸 수 있어서일 게다.

그러나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유엔 제재가 해제되어야 가능한 부분이며,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고 해도 한국이 섣불리 중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서 북한에 당근책을 제시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트럼프 칭찬에 아주 인색한 미국 언론들조차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선 “배드 딜(bad deal)보다는 노 딜(no deal)이 낫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빈손 귀국에 토를 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하는 분위기다. 트럼프가 영변 핵 시설 외에 추가 발견한 대규모 우라늄 농축 핵시설을 거론하며 김정은의 허를 찌르지 못했다면 나중에 트럼프는 더 큰 웃음거리가 됐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남북 경협과 다자 안보체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신한반도 체제’ 구상을 밝힌 건 상당히 유감스러운 처사라는 생각이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이번 회담까지 결렬시킨 마당에 정작 당사국으로서 엇박자가 도드라진다. “북미 대화 완전 타결,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도를 묻고 싶다. 배드 딜이어도 반드시 성사시키는 게 맞다는 것인지. 국민과 기업들은 언제까지 ‘종전 선언’ ‘남북 경협’이란 표현에 희망 고문을 당해야 하는 것인지.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과의 빅딜에서 한국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미국 정부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실제로 전력(戰力)을 이동시켜 야외 기동훈련을 하는 ‘독수리훈련’과 지휘 계통을 시뮬레이션 하는 ‘키리졸브’를 모두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측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따른 비용이 너무 커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고, 훈련에 중점을 둔 소규모 훈련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미국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이 북한과의 3차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북미 사이에 낀 한국은 배제한 결정이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작년 6월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의향을 표명했다. 트럼프는 군사훈련 비용이 너무 크다고 여러 차례 비판했고,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똑같은 견해를 나타냈다.

미 국방부는 지금까지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려면 합동훈련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으나 트럼프 정권이 작년에 합동훈련 중단의 뜻을 밝힌 이후에는 군사훈련이 최장 2년은 없어도 지장은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김 위원장은 아직 여장도 풀지 못했다. 북한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장의 결단은 우리에게가 아니라 그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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