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조한테 연락하셨어요?

입력 2018-11-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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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벼리 금융부 기자

얼마 전 출입처가 바뀌었다. 정책금융기관들을 맡게 됐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낯선 곳. 인사부터 했다. 그중에서도 회사를 대표하는 얼굴 격의 두 곳, 홍보 담당과 노조를 만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수출입은행을 찾았다. 홍보실 직원들과 일사천리로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했다. 이어 노조에 전화를 걸었다. “기자분이 먼저 연락을 주신 건 처음입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노조에 가입한 지 얼마 안 됐을 수도 있고, 그저 인사치레로 하는 말일 수도 있으니까. “내일 인사드리러 갈게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기다리던 노조 관계자는 아니었다. “노조에 연락하셨다면서요?” 홍보실 직원이 대뜸 물었다. 전날 노조원과의 통화 내용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노조에서 기자분들 만나기 부담스러워해서요. 관련 내용은 저희한테 문의하시면 됩니다.”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볼 겨를도 없이, 그저 “알겠습니다”라고 짧게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노동 조건의 개선과 노동자의 사회ㆍ경제적인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노동자가 조직한 단체.’ 노동조합의 사전적 정의다. ‘이윤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회사가 혹시나 불합리한 경영을 자행하는 것을 또 다른 내부자의 시선에서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목소리’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칠 법한 목소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게 노조의 근본적인 존재 근거다. 때로는 부드러운 대화로, 때로는 강한 외침으로 회사에 또 다른 목소리를 표출하는 것이 노조의 역할이자 책무다.

노조가 목소리를 잃고, 모든 발화(發話)를 사측에 떠맡기는 것은 자기 입에 멍에를 씌우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더 나아가 스스로 노조이길 포기하는 처사다. 기만행위라는 측면에서 ‘무성(無聲)’노조보단 차라리 ‘무(無)’노조가 나을 수 있다.

“노조에 연락하셨어요?”라는 질문에 노조의 목소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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