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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의 키워드] 뉴페미의 미러링(Mirroring)- 이것은 역지행지(易地行之)다!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한 뉴페미니스트들(뉴페미)의 대학로 시위 기사를 읽다가 ‘미러링’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내가 읽은 기사는 이렇게 되어 있다.

“뉴페미의 가장 대표적인 운동 방식 중 하나는 ‘미러링(Mirroing)’이다. 여성 전체를 싸잡아 조롱하던 남자들의 언어를 반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비틀어 보자는 취지다. ‘이래서 남자는 밖에 다니면 안 돼’ ‘조신한 남자가 최고’ 등 평소 여성이 흔히 듣던 말에서 성별만 바꾼 일종의 반격이다.”

이 문장 뒤에는 “미러링이 거울처럼 비추는 본래의 혐오 표현들이 사라진다면 미러링의 표현들도 자연스럽게 퇴색될 것이다”라는 뉴페미 운동가의 언급이 있었다. “니네가 싫어하는 것은 우리도 싫어한다. 니네가 우리에게 싫은 것을 계속하면 우리도 니네가 싫어하는 것을 계속하겠다. 우리를 중단시키려면 니네가 먼저 중단하면 된다. 니네가 스스로 생각을 못 바꾼다면 우리가 바꿔 주겠다”가 뉴페미의 전략인 것이다.

나는 탄복에 탄복을 거듭했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최고의 갈등 해소 방편으로 꼽아온 우리 민족이 마침내 그것을 매우 손쉽게, 전 국가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보았다.

역지사지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도 ‘남의 신발 신어 보기(Putting on the other’s shoes)’라는 말로 역지사지의 중요성을 표현해 왔다. 하지만 역지사지는 쉽지 않다. 스스로 자기 생각을 바꾸는 게 쉽다면 동서양을 막론, 이렇게 오랫동안 그것이 강조돼 왔을 리 없다. 강제가 없으면 역지사지는 이뤄질 수 없다. 뉴페미가 강제적 역지사지의 실험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뉴페미의 전략을 역지사지가 아니라 ‘역지행지(易地行之)’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뉴페미의 미러링은 남자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역지사지가 아니라 남자들의 행동을 바꿔 보려는 역지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내 말을 뒷받침할 사례도 있다. 지난달 초 서울 강남역에서 열린 토플리스 집회다. “니네는 걸핏하면 웃도리를 벗고 가슴을 까는데, 왜 우리는 거추장스러운 옷가지 하나를 더 입어야만 하느냐? 이제 우리도 브래지어를 벗고 가슴을 까 보련다”라는 강남역 집회의 취지는 남자들에게 역지행지를 해보고 말하라는 것 아닌가?

▲지난 7일 열린 뉴페미 대학로 시위.
▲지난 7일 열린 뉴페미 대학로 시위.
한 인터넷 매체의 젊은 남자 기자가 일주일 동안 브래지어를 입고 생활한 후 쓴 체험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여성 팬티를 입고 젤에 붉은 물감을 섞은 모조품 생리대도 착용해 봤다는 기사도 썼다. ‘불편하고 불편하더라’가 기사의 결론이었다. 미러링을 활용한 뉴페미의 역지행지 전략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증거 아닌가?

내가 생각한 역지행지는 원래 ‘반대에 찬성하기’였다. 논쟁을 할 때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도록, 그게 허위에 바탕한 인신공격이든, 진실한 폭로이든 상대방의 모든 것을 까발릴 수 있도록 허용하되 투표를 할 때는 자신이 욕한 사람에게 찬성표를 던지도록 하자는 게 ‘반대에 찬성하기’이다. 물론 ‘찬성에 반대하기’도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

나는 나의 역지행지가 제도화된다면 모든 논쟁에서 무턱대고 반대나 찬성하는 것, 정략적인 비난이나 옹호는 사라질 거라고 보았다. 반대에 찬성하기의 경우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사전에 해소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표결까지 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험한 말, 욕설에 가까운 비난, 허위사실 유포 같은 행위도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갈등이 없는 나라, 평화와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세계 최고의, 세계에서 존경받는 국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내 생각을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뉴페미가 역지행지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그들의 미러링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정숭호 언론인, 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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