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우리도 외국인이다

입력 2018-07-06 11:04 수정 2018-07-0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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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독일에서 네오 나치(신나치주의)가 극성을 부릴 때 유학생 신분이었던 어떤 교수로부터 당시 상황을 들은 적이 있다. 유색 인종 외국인에게 가해진 무차별적 테러로 학교에 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가족들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 며칠을 굶다시피 하며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중 “Wir sind auch Ausländer(우리도 외국인이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양심적인 독일인들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어 집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 독일은 난민 수용에 적극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과거의 오명을 씻어내고 있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때, 후에 ‘난민의 엄마’라 불린 메르켈 독일 총리는 무조건 수용을 결정해 지난 몇 년 사이 백만 명이 넘는 난민을 받아들였다.

최근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인들의 난민 수용 문제로 나라 안이 시끄럽다. 오랜 내전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 탈출한 이들에 대해 제주도민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분열되고 있다. 특히 기독교계의 양분이 눈에 띈다.

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논의 대신 난민에 대한 혐오를 앞세우는 일부 기독교계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평생을 외국인으로 살았고 그의 자손들 역시 끊임없이 다른 나라를 전전하며 살았던 이방인들이었다. 종교를 떠나 유한자인 인간은 결국 이 땅에 사는 것이 나그네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 모두는 나그네요, 외국인이라고 외친 독일인들의 고백이 오히려 기독교 정신에 부합한 것이 아닐까.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은 자신들 입장에서 ‘발견’이라고 했지만 그 땅에는 엄연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 원주민을 쫓아낸 자리에 울타리를 치고 살았다. 뒤늦게 도착한 또 다른 유럽인들이 그 땅에 들어오려고 하자 소유권을 주장했다. 여기에서 소유권에 관한 논쟁이 생겨났다. 먼저 온 유럽인들은 인디언들의 땅을 강탈했으면서도 후에 온 유럽인들에 대해 소유권을 내세우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인디언은 점유하였을 뿐 소유하지 않았다”는 논리로 먼저 온 유럽인들의 소유권을 옹호했다. 궤변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의 소유권을 확대해가면 국가의 경계인 국경이 될 것이다.

소유권이나 국경과 같은 오래전에 형성된 법리를 무효화하자는 극단적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이 땅에 들어온 난민 신청자를 모두 받아들이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도 가입한 유엔 난민협약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경제적 목적이나 국내 체류 방편으로 난민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는지 난민 요건을 철저히 심사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예멘 난민 신청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과장된 우려를 낳고 여기에 외국인 혐오가 더해짐으로써 합리적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9월 터키 해변으로 밀려온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어린이의 시신 사진은 당시 난민 수용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독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어 다른 유럽국이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멕시코 국경에서 부모로부터 강제 격리되어 울부짖는 아동의 사진은 이민자의 자녀와 부모를 격리하는 무관용 이민정책을 밀어붙였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물러서게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체류하던 중 낳은 아이와 함께 제주에 들어와 초조하게 난민심사를 기다리는 한 예멘인의 사진 앞에 숙연해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나라 잃고 남의 나라를 전전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의 선조들, 먹고살기 위해 전 세계로 흩어져 살고 있는 재외동포들을 생각한다면, 최소한 난민 신청자에 대한 혐오의 시선만큼은 거두어야 할 것이다.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배척과 외면은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거부하는 범죄”라고 말한 가톨릭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의 “난민을 포용하고 자비를 베풀라”는 호소가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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