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아첨꾼을 싫어하시는군요?”-낙하산인 그분도 좋아할 아부

입력 2018-04-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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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 너마저?” 셰익스피어의 비극 ‘줄리어스 시저’에서 시저는 자기를 찌르는 무리에 브루투스가 있는 걸 보자 이렇게 말하곤 숨을 거둔다. 브루투스는 시저가 가장 총애한 부하이자 동료였다. 그러나 시저가 로마의 공화정을 끝내고 황제가 되어 모든 권력을 가지려 하자 반대파-암살단의 우두머리가 되어 시저의 몸에 가장 마지막으로, 가장 깊게 칼을 찔러 넣었다. 이 드라마틱한 반전과 비극성으로 인해 ‘브루투스 너마저?’는 ‘줄리어스 시저’의 최고 명대사로 꼽히고, 우정과 배반, 동맹과 배신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경구(警句)가 되었다.

“당신은 아첨꾼을 싫어하시는군요?” 하지만 나는 ‘줄리어스 시저’ 2막 1장에 나오는 이 한 줄도 ‘브루투스 너마저?’만큼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암살 장소로 나가지 않으려던 시저가 이 말을 듣고 우쭐해져 그곳으로 나갔다가 난자당해 죽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시저를 죽이기로 모의한 브루투스 일파는 그가 원로원 언덕에 나타나지 않으면 모든 게 탄로 날 것이라고 걱정을 한다. 이때 그중 한 명인 데시우스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에게 ‘아첨꾼을 싫어하시는군요?’라고 했더니 그는 ‘그렇다’고 말했어. 그는 정말로 아첨에 약한 거지. 내가 내일 시저 집에 가서 아첨으로 그를 끌어낼 테니 걱정하지 말게. 자신이 있어.” 데시우스는 이튿날 아침 일찍 시저 집에 가서 아첨을 늘어놓아 “간밤에 악몽을 꿨으니 나가지 말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집에 머무르려던 시저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아첨꾼을 싫어하시는군요?”라는 궁극의 아첨이 없었다면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시저의 마지막 말도 없었을 것이기에 데시우스의 이 대사는 ‘줄리어스 시저’에서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아첨꾼을 싫어하시는군요?” 미테랑 대통령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도 자신의 ‘만델라 평전’에 데시우스의 대사를 적어 넣었다. 아부의 물결이 도처에서 밀려오는데도 만델라가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도 시저처럼 아첨을 좋아했지만, 시저와는 달리 “아첨꾼을 싫어하시는군요?”라며 접근하는 아첨꾼을 골라냈기 때문이라고 랑은 썼다.

▲빈젠초 카무치니의 ‘시저의 죽음’(부분).
▲빈젠초 카무치니의 ‘시저의 죽음’(부분).
CNN과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하다가 스튜디오에서 쫓겨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실세 참모 스티븐 밀러(33)에 대한 외신기사도 생각난다. 트럼프의 최측근이었던 스티브 배넌이 느닷없이 백악관에서 쫓겨난 후 트럼프에 대한 분노를 담아 쓴 ‘화염과 분노’라는 책이 화제를 모을 때다. 밀러는 “책은 쓰레기 더미이며, 배넌은 기괴하고 명백하게 복수심에 가득 찬 발언을 했다”고 비난한 후, CNN에 대해서도 “24시간 반(反)트럼프 방송을 하면서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다”고 쏟아냈다. 그러고는 트럼프에 대해 칭찬을 시작했는데, 참다못한 앵커가 “당신은 아부하는 잡부!”라며 인터뷰를 끊었다는 내용이다.

밀러가 이때 “그분은 아첨꾼을 싫어하는 사람이오”라고 말하지 않은 게 아쉽다. 이 말을 안 했는데도 측근이고 뭐고 참모와 각료들을 무자비하게 쳐내는 트럼프의 백악관에 그가 아직 남아 있는 걸 보면 트럼프는 그 정도의 아첨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실력이 있어도 윗사람과 ‘코드’가 안 맞아 승진을 못했다고 생각하거나, 실력이 없어 아부라도 잘 해서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상황과 분위기를 봐서 한번 ‘윗분’께 “아부꾼을 싫어하시나 봅니다”라고 해보기를 권한다. 그분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성공이다. 승진과 좋은 보직이 보장될 것이다.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윗분’이 싫지만, 살기 위해 잘 보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아서 ‘줄리어스 시저’를 다시 뒤적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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