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저출산 사회와 미투 운동

입력 2018-03-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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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영 부국장 겸 산업2부장

최근 한 지인에게서 홍콩에 사는 딸 얘기를 듣다 놀란 대목이 있었다. 고소득 직장인인 지인의 딸은 출산 후 필리핀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는데 비용이 월 75만 원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재중동포(조선족) 육아 도우미 비용의 절반 수준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다음 얘기였다. 한국 친정에 방문할 때 이 필리핀 도우미가 동행할 경우가 있는데, 공항 도착 즉시 고용주가 여권을 빼앗아 보관하는 일이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이란다. 이유인즉, ‘도망갈까 봐’이다.

영어가 가능한 필리핀 도우미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들도 한국에 오는 순간 소득이 높아지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미리미리 고용주가 단속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육아 도우미 시장에서도 국제적인 ‘호갱’인가 싶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또 다른 60대 지인은 요즘 여고 동창들이 다 모이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딸 가진 친구 중에 똑똑하게 키운 딸이 고임금 전문직으로 일하면서 결혼 후 육아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친정엄마가 육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돼 모임에 자주 못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한국은 육아 전쟁터이고, 한국에서 육아는 돈과 시간과 누군가의 희생을 수반하는 호사(豪奢)요, 사치가 됐다. 다행히 세상이 많이 바뀌어 일과 가정 생활의 양립을 지원하는 제도적인 기반은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한국은 저출산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가임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1.05명으로 전 세계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지난 10여년간 정부가 1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었지만, 백약이 무효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직 결혼·출산·육아 단계에 접어들지 않은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도록 육아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하는데, 출산장려금이나 육아 비용 절감에 맞춰져 있는 정책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사실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너무나 복잡다단해서 풀기 어려운 숙제다. 청년 실업을 비롯해 주택 가격, 사교육비 등 출산·양육 관련 비용과 심리적인 요인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출산장려 지원책이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저출산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고 있는 부부 등 남녀 모두의 문제다. 하지만 저출산 현상의 근저에는 경력단절, 독박 육아, 자아실현 방해 등 여성들의 미래 불안감을 야기하는 부분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저출산을 여성만의, 혹은 한 가정만의 문제로 여길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전 공동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일찍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가족 문화를 변화시켜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가정 내 남녀의 성 역할을 재조정하고, 결혼에 따른 여성의 불이익을 해소해 여성의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영미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발표한 ‘출산과 성평등주의 다층분석’에 따르면 성평등주의적 사회에서는 여성의 사회참여가 높을수록 오히려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고 남녀의 성(젠더) 격차, 특히 한국의 경우 OECD 1위인 남녀 임금격차를 줄여 성평등 인식을 확산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저출산의 해결책이 된다는 얘기다.

유난히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한국은 최근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거세게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그만큼 한국 여성들에 대한 억압이 컸고 저항심리도 컸던 탓일 것이다.

이번 미투 운동 이후 일각에서 ‘펜스 룰’을 운운하는 편협한 시각도 있지만, 대부분의 많은 남성들은 성평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믿는다. 남녀 사이의 위계적인 문화를 바꿔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변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 저출산을 꺼리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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