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커피자판기 문제 하나에도 ‘타율체제’의 못된 버릇이

입력 2018-01-3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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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초·중·고교생에게 커피가 좋을 리 없다.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는 만큼 불면증을 초래하거나 신경이 과민해질 수 있고, 어지럼증과 가슴 두근거림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사람 역시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집에서 아무리 조심시켜 봐야 밖의 환경이 그렇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학교만 해도 그렇다.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거나, 더운물 나오는 정수기가 있어 커피 믹스 한 잔 정도는 쉽게 타 마실 수 있게 되어 있으면 아이들은 쉽게 그 유혹에 빠진다.

이런 점에서 학교 내 자판기 설치를 금지하는 내용의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개정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더욱이 카페인 함유량이 높은 ‘어린이 기호식품’ 등은 이미 판매 금지되고 있는 상태로, 커피만 ‘어른 음료’라는 관점에서 빠져나가 있었다. 실제로는 교사 등 어른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마시고 있는 만큼 추가로 규제한다고 하여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문제는 규제하는 방식인데, 이 나라의 모든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이렇게 일률적으로 규제해야 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방교육청 단위나 학교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처리하면 안 되느냐 묻는 것이다.

지방교육청이나 학교 단위의 자율에 맡기는 경우 다양한 접근이 이뤄질 수 있다. 이를테면 자판기 정도가 아니라 교장실부터 커피를 없애 커피 자체를 학교로부터 아예 추방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커피 믹스를 가져오거나 커피 대신 각성제를 찾는 학생들을 걱정해 카페인 함유량이 적은 커피를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접근과 실험들을 통해 각 학교 사정에 맞는 접근방식을 찾아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부는 학교 안에 얼마나 많은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고, 또 얼마나 많은 학생이 이를 이용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정도의 일만 해도 좋다. 그러면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학교와 학부모들의 반응은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교육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학부모들이 둘러앉아 숙의하고 토론하고, 또 그런 가운데 이들 모두 스스로 학교 공동체의 주인임을 느껴갈 수도 있다.

정말이다. 이런 것 하나 지방교육청이나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할 것 같으면 교육자치는 무엇 때문에 있고, 학교 운영위원회는 무엇 때문에 있는가. 특히 정부와 여당은 그렇다. ‘연방제에 가까운 지방자치’를 이야기하는 마당에 어떻게 이런 법을 만들거나, 만드는 것을 방관할 수 있나.

자율체제라 하여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민이 타율체제에 익숙해져 있는 경우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부족하고, 그래서 문제를 방치하는 등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율의 정신과 습관을 기를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곧장 집권과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기보다는 말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타율의 세상을 살아왔다. 조선왕조 500년,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의 권위주의 정부 시대의 역사가 그랬다. 민주화 이후도 마찬가지, 시민사회와 시장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국민은 어리석고 사납고, 그래서 국가나 정부가 규제하고 가르치고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전제와 생각들이 유령처럼 살아 돌아다니고 있다.

어디 커피자판기 문제 하나를 두고 이렇게 이야기하겠나. 곳곳이 그래 왔고, 또 그렇다. 대학의 회계는 교수, 학생, 학부모가 아닌 교육부가 감사를 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시장·군수가 몇 cc 이하의 차를 타야 하는지도 주민이 아닌 행정안전부가 규제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리석고 사나운 국민은 이를 지켜보고 비판할 능력이 없다는 전제에서이다.

국회와 정부에 묻는다. 그런가? 이 나라의 국민을 여전히 어리석고 사나운, 그재들로 보는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규제와 획일화의 칼을 들이대야 하는 그런 존재들로 보는가? 답을 하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정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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