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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그녀의 때꾼한 두 눈에 눈물이

역시 세월은 약이다. 가족 모임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을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엄마도 이젠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신다. 아버지는 별이 되었을 거라고. 어둡고 추운 날 별이 더욱 빛나듯이 자식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다섯(5남매) 마음을 하나로 오롯이 모아주는 것 같다고. 살아생전 아버지는 다정다감했고, 특히 아내 사랑이 남달랐다. 그래서 남은 가족들은 이별의 고통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2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 가족에게 아버지는 ‘가슴 흔드는 슬픔’이 아닌 ‘따뜻한 위로’의 존재이다. 다 세월 덕이다.

지난 주말 만난 지인은 새해가 되면 늘 같은 꿈을 꾼다고 했다. 1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가족 여행을 다니는 즐거운 꿈이란다. 그런데 꿈을 꾼 다음 날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 늘 나쁜 소식이 들린단다. 넘어져 다리를 다쳤거나 손을 데었거나…. 어머니에게 세심하지 못한 딸을 꾸짖기라도 하듯 꿈속 아버지의 표정은 항상 밝지 않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저세상에서도 엄마를 향한 아버지의 끈끈함과 애틋함이 느껴진다고.

며칠 전에도 아버지가 꿈에 보여 불안했는데, 역시나 어머니가 독감에 걸렸단다. 사흘 밤낮을 병구완하고 왔다는 그녀. 두 눈이 때꾼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가족이라는 존재만큼이나 정겹고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이 또 있을까.

과로로 정신이나 몸이 지쳐 눈이 쏙 들어가고 생기가 없어 보일 때, ‘떼끈하다’라고 표현하는 이가 많다. ‘떼꼰하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때끈하다’는 없는 말이고, ‘떼꼰하다’는 경기 서해안 지역의 사투리이다. 표준어는 ‘때꾼하다’인데, 눈이 퀭한 정도가 심하지 않을 경우엔 ‘대꾼하다’라고 말해도 된다. 모음을 바꾼 ‘떼꾼하다’, ‘데꾼하다’라는 말도 쓸 수 있다. 이 역시 ‘떼꾼하다’보다 ‘데꾼하다’가 여린 느낌을 준다.

문학 작품에서도 ‘때꾼하다’의 용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정말 되게 앓았는지 눈이 때꾼하고 얼굴이 여간 초췌해 보이지 않았다.”(송기숙, 녹두장군), “판사라는 자는 허여멀끔한 얼굴에 떼꾼한 두 눈이 첫눈에도 소갈머리 좁은 그야말로 젊은 서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이호철, 문)

피로가 계속되면 눈이 퀭한 것을 넘어 낯빛에 핏기가 아예 없어지는데, 이럴 땐 ‘파리하다’라고 말하면 된다. 병든 사람의 기색이나 얼굴빛을 표현한 형용사인데, ‘초췌하다’ ‘수척하다’ ‘핼쑥하다’ ‘해쓱하다’와 같은 뜻이다. ‘파릿하다’라고 말하고 쓰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으로 ‘파리하다’만이 표준어이다.

그렇다면 ‘강파리하다’는 무슨 뜻일까? ‘강’이 주는 강한 어감 때문에 ‘파리하다’보다 훨씬 더 마르고 낯빛이 나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병든 기색이 역력한 깡마른 사람을 상상해보자. 기운이 떨어져서라도 성질이 좋을 리가 없겠다. ‘강파리하다’에 ‘성질이 까다롭고 괴팍한 듯하다’라는 뜻이 보태진 까닭이다. 그런 사람은 ‘강팔지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불청객 독감으로 인해 눈이 떼꾼한 사람들이 많다.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이 부모님, 형제자매에게 큰 힘이 될 새해 첫 달이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부글부글 떨리더라도 (나만 그런가?) “사랑한다”는 말도 건네자.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가족이니까. 오늘도 바람이 차다. 감기 걸릴까 목도리를 둘러주며 어깨를 툭툭 치시던 아버지가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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